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번 음력설이 지나면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이후 일곱 번째 임진년이 된다. 올해부터 사용되는 동아시아사 교과서에서는 '임진전쟁(戰爭)'이라는 용어가 채택되어 국사 교과서의 '임진왜란(倭亂)'과 혼용된다.

임진왜란 대신 임진전쟁이란 명칭을 채택한 측은 이 전쟁이 동아시아 대전(大戰)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임진왜란은 동아시아 공간의 질서를 뒤흔들어 놓았을 뿐 아니라 세계사적 의미를 지닌 것이 사실이다. 일본은 이미 1549년부터 예수회 신부들을 통해 중화(中華)질서 밖의 유럽을 인식했다. 1582년에 10대 소년들로 구성된 덴쇼사절(天正使節)이 유럽에 파견되어 스페인의 펠리페 2세를 비롯한 유럽의 군주들과 그레고리우스 13세 교황을 알현하고 1590년 일본에 돌아와 지정학적 인식의 혁명을 촉진시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침략에 앞서 스페인제국(帝國)의 전초기지였던 마닐라를 노렸지만, 중남미에서 필리핀에 이르는 스페인 제국의 판도에 압도당했다. 한편, 펠리페 2세에게 상주(上奏)된 세계전략들 중 하나는 가톨릭에 귀의한 일본의 '기리시탄(吉利支丹) 다이묘(大名)'들과 연합해서 명(明)제국을 치는 것이었다. 실제로 임진왜란의 선봉장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는 독실한 '기리시탄 다이묘'였다. 1598년 히데요시와 펠리페 2세가 사망하지 않았다면 역사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을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임진왜란을 동아시아사나 세계사적 차원에서 되새겨보는 것은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긴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임진왜란'을 '임진전쟁'으로 대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첫째, 공동체의 기억이 온축(蘊蓄)되어 있는 역사용어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려면 사회적으로 충분한 숙의(熟議)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학자들이 논문이나 저서에서 각자의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공동체의 기억을 전승하면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던 용어를 교과서를 통해 바꾸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둘째, 일부에서는 '왜(倭)'라는 전쟁도발 주체를 삭제함으로써 동아시아 공동체가 촉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동아시아 공동체를 위한 역사가 아니라 바른 역사 위에 동아시아 공동체가 만들어져야 한다. 아울러 '란(亂)'이라고 하면 작은 전쟁을 연상하게 된다고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8세기 당(唐)제국을 멸망으로 이끈 '안사의 난(安史之亂)'으로 줄어든 인구는 약 3600만명에 달한다.

셋째, '임진왜란'이 동아시아 공통의 객관적 역사용어가 되기 어렵다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그렇지만 동아시아사 교과서는 동아시아 학생을 대상으로 동아시아 학자들이 공동집필한 것이 아니다. 한국사를 배우는 한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과서이다. 수백년 동안 사용해왔던 용어를 우리 교과서에서 먼저 바꾸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

넷째, 장차 만들어질 동아시아사 공동의 교과서를 염두에 두고 먼저 객관적인 용어를 선도한다는 생각도 수긍하기 어렵다. 우리가 임진전쟁이라고 사용한다고 해서 일본이 이를 받아들일 리 없다. 일본은 임진왜란을 센고쿠(戰國)시대에 뒤이은 아즈치모모야마(安土桃山)시대의 연호를 따서 '분로쿠·게이초(文祿·慶長)의 역(役)'이라고 불러왔다. 시간적 표준이 달랐던 것이고, 그것이 중요한 전쟁 원인 중 하나이기도 했다.

다섯째, 향후 동아시아 학자들이 공동집필하는 공동의 역사교과서를 집필하게 되더라도 임진전쟁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전쟁' 같은 명칭이 더 적합할 수 있다. 이는 프랑스인들이 널리 사용하는 '나폴레옹 전쟁'처럼 전쟁 결정자의 이름을 명기하되, 일본인 전체를 적대시하지 않는 방식이다.

여섯째, '임진왜란'이란 명칭에 함축되어 있는 당대의 주자학적 세계관이 증발되어 버릴 위험이 있다. 임진왜란이라는 명칭은 중국의 천자(天子)와 조선의 왕(王)을 매개하는 인식적 토대를 반영한 것이다. 이 용어를 그대로 두어야지 전쟁으로 치달았던 조선과 일본의 시·공간적 인식의 충돌과 결국 이 전쟁이 왜 평화조약으로 귀결될 수 없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충무공 이순신과 더불어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던 것은 '임진왜란'에서였을까, 아니면 '임진전쟁'에서였을까? 모든 교과서의 역사용어들이 그렇듯이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처럼 인간을 대량으로 몰살시켰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명칭 변경은 오랜 세월 온축되어 온 기억의 역사성을 존중하는 토대 위에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진행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시대에 따라서 이런저런 명칭들이 남발되고, 공동체를 구성하는 세대 간의 인식적 단절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