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의 국보순례] [145] 김관호의 해질녘

조선일보
  • 유홍준 명지대 교수·미술사
    입력 2012.01.18 23:17 | 수정 2012.01.25 10:33

    언젠가 '월간미술'이 '한국 근대 유화 베스트 10'을 설문 조사한 결과 베스트 1로 선정된 작품은 일본 동경예술대학에 소장되어 있는 김관호의 '해질녘'(사진)이었다. 김관호(金觀鎬·1890~1958)는 동경예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한 두 번째 한국인 유학생이었다. 평양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16년에 수석으로 졸업하고 그해 '문부성 전람회'에 졸업작품인 '해질녘(夕暮)'을 출품하여 영예의 특선을 차지했다.

    '해질녘'은 대동강에서 목욕하는 두 여인을 그린 누드화이다. 보랏빛으로 물든 석양의 능라도 풍경은 인상파 화풍으로 아련하게 묘사하고 풍만한 두 나부(裸婦)의 뒷모습은 몽환적인 낭만파 화풍이다. 당시 매일신보는 이 사실을 대서특필하면서 춘원 이광수의 흥분에 가득 찬 관람기를 게재했다. '아! 특선, 특선이라! 특선이라면 미술계의 알성 급제다… 장하도다 우리 김군!' 그러나 신문은 '벌거벗은 그림인고로' 게재하지 못함을 양해 바란다고 했다. 일제에 멸시받고 있던 상황에서 그들의 가장 권위 있는 공모전에서 특선을 했다는 것은 오늘날 김연아의 금메달만큼이나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김관호는 근대미술의 기린아로 데뷔했지만 미술계를 이끌어가는 화가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졸업한 그해에 평양에서 개인전을 열고, 제2회 조선미술전람회에 '호수'라는 누드작품이 입선되고, 1925년에는 평양에서 김찬영과 '삭성회(朔星會)'라는 회화연구소를 개설하여 길진섭, 문학수, 정관철 같은 제자를 길러냈다. 그러나 1927년 무렵 그는 소리소문없이 화단에서 사라졌다. 술과 사냥에 빠졌다는 씁쓸한 소식만 들려왔다. 그는 근대의 문턱에서 잠깐 나타났다 사라진 샛별 같은 존재로 끝났다.

    해방 때 평양에 있던 김관호는, 그의 며느리가 증언하기를 조선미술가동맹의 고문으로 불려나가 30년 만에 다시 붓을 잡아 폴란드에서 열린 조선미술전에 '모란봉의 가을'을 출품하기도 했지만 1958년 10월 20일, 69세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 바로잡습니다
    ▲19일자 A29면 유홍준의 국보순례 ‘김관호의 해질녘’에서 ‘1958년 10월 20일 79세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중 ‘79세’는 ‘69세’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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