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시동 상하이 특파원

"마잉주(현 대만 총통)는 청렴합니다. 천수이볜(야당 출신 전임 총통)은 얼마나 부패했습니까."

14일 집권당 후보 마잉주(馬英九) 현 총통의 재선(再選) 성공으로 끝난 대만 총통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마잉주 지지자들이 가장 많이 내세운 말은 '청렴'이었다. 4년간 최고권력자로 있었던 사람을 '청렴'으로 홍보할 수 있다는 건 적어도 아시아 정치판에선 드문 일이다.

마잉주와 맞섰던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 후보는 지난해 11월 "마 총통이 과거 금융기관으로부터 1500만 대만달러(약 6억원)의 정치헌금을 받고 5차례나 샥스핀 식사 대접을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한 마잉주의 대답이 재미있다. "돈은 안 받았다. 샥스핀 식사는 5번이 아니고 2번이었다." 통상 정치인들의 답변인 "대접받은 사실이 없다" "기억나지 않는다"가 아니고 5번을 2번으로 수정하면서 식사한 사실을 시인한 것은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그나마 타이베이 시장 재직 때의 일이며 총통 재임 때는 야당이 꼬투리 잡을 건수조차 못 찾을 정도로 깨끗했다. 민진당은 이 문제를 들고 나왔다가 오히려 큰 손실을 봤다는 평가가 사후에 나오고 있다.

천수이볜(陳水扁) 전임 총통이 지난 2000년 국민당의 반세기 집권을 종식시키며 극적으로 정권을 잡았을 때, 현장 취재 중이던 기자는 외국인인데도 야릇한 흥분을 느꼈었다. 그가 내세운 '부패 척결'이란 구호는 국민당의 거대한 부패구조에 염증을 느끼던 유권자들의 공감을 얻었고, 대만 사회의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부풀렸다. 하지만 이후 8년 집권 동안 천 총통과 그의 측근들이 저지른 각종 부정부패는 과거 국민당의 모습을 그대로 빼닮았다. 결국 총통부 업무자금 횡령과 돈세탁 등으로 천 총통 부부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주식 내부 거래 등으로 사돈·처남·사위가 구속되고, 아들과 며느리까지 돈세탁에 개입했음이 드러났다. 수많은 사람이 실망하면서 부패라는 고리가 얼마나 끈질긴지 실감해야 했다.

마잉주 재선의 최대 공신은 경제실적이 아니다. 그는 중국과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체결해 국내 경기침체를 막았으며, 전 세계 금융위기 파장에도 2010년 10.8%라는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룩했지만 선거판에선 큰 도움을 받지는 못했다. 서민들은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임금이 안 오르고, 실업률이 높다고 불평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의 청렴성은 정파를 떠나 많은 유권자의 공감을 얻었다.

대만 선거와 그 여파를 한국 정치권도 주목했다. 대만에서 첫 여성 총통이 나오면 우리도 어떻다느니, 대만에서 진보당이 집권하면 한국 선거에도 어떤 효과가 있을 것이라느니 하는 분석들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게 있다. 한국 정치인, 특히 대권을 염두에 둔 정치인들은 마잉주 못지않은 청렴을 자신할 수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돈정치를 하지 않을 수 없는 한국 정치구조와 문화를 탓하려거든 대권 뜻을 접는 게 좋다. 대만 정치가 결코 한국보다 선진적이지 않다는 사실, 그런 풍토에서 4년간 부패 추문 없는 총통이 재선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우리 정치인과 대권 주자들은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