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m 높이의 삼호주얼리호 선미(船尾)를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때 어떻게 하면 빨리 작전을 잘 마무리할 것인가 하는 생각에 시간이 꽤 길게 느껴졌습니다."

작년 1월 21일 오전 11시9분(이하 한국시각) 삼호주얼리호 선원들을 구출하기 위한 아덴만 여명작전 때 해군 최정예 특수부대 UDT/SEAL팀 중 가장 먼저 삼호주얼리호에 올라간 김평민(28) 중사는 당시의 심경을 이렇게 말했다.

작년 1월 아덴만 여명작전에 참여했던 해군 장성, 장교 및 부사관들이 지난 12일 최영함에 모여 1년 전 작전을 회상하며 주먹을 굳게 쥐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최영함 작전관 이용천 소령, 최영함장 최석윤 대령, 전 해군작전사령부 작전처장 심승섭 준장, UDT/SEAL 작전관 김규환 대위, 삼호주얼리호에 가장 먼저 올랐던 UDT/SEAL 김평민 중사, 링스 헬기 조종사 강태열 소령. 해군특수전 여단장 강신도 대령은 보안문제상 사진촬영을 사양해 당시 작전에 참여하지 않은 최영함장 최 대령이 대신 촬영에 응했다.

아덴만 여명작전 1주년을 맞아 김 중사를 비롯, 작전에 참가하거나 지휘했던 제독과 영관 및 위관장교, 부사관 등 6명이 지난 12일 당시 작전에 투입됐던 최영함에 함께 모여 1년 전을 회상했다.

"해적들은 가스탄에 약하다"

김 중사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야시경으로 해적들을 발견하면 조건반사적으로 사격을 하거나 생포했다"며 "어둠 속에서도 인질과 해적을 구분해 사격하는 훈련을 수없이 실시했던 터여서 선원과 해적들을 선별(選別)해 해적들만 공격했다"고 말했다.

당시 해적진압 작전에는 해적들의 눈과 귀를 2~3초간 마비시키는 섬광 폭음탄과 함께 가스탄도 사용됐다. 해군 고위관계자가 "해적들은 가스탄에 약하다고 하니 가스탄도 쓰는 게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낸 데 따른 것이었다. 해군작전사령부에서 UDT/SEAL 작전을 원격 지휘했던 강신도(50) 해군 특수전여단장(대령)은 "삼호주얼리호와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던 부산항의 삼호헤론호를 여러 차례 답사해 내부구조와 인질 예상위치, 작전팀 이동에 걸리는 시간 등을 파악해 최영함에 알려줬다"고 말했다.

석 선장이 6발의 총탄을 맞아 생명이 위독하자, 김 중사는 자신이 갖고 있던 미군의 응급구호 키트로 석 선장을 돌봤다. 그는 이 키트를 250달러에 구입했다고 한다. 김 중사는 "미해군 SEAL팀과 연합훈련을 하면서 미군 실전경험의 노하우가 담긴 응급키트가 매우 인상적이어서 구입했었다"며 "응급키트의 급속(急速)특수지혈 패드로 지혈하는 등 석 선장 응급조치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5박6일간 잠 안 자고도 정신 멀쩡

최영함에서 구출작전 세부계획을 짠 작전관 이용천(38) 소령은 "UDT/SEAL팀뿐만 아니라 모든 최영함 장병들이 주먹밥과 초코파이로 식사를 대신하면서 최선을 다했던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고 전했다. 삼호주얼리호 피랍 후 10여 차례 밤낮으로 출동하며 해적들을 위협하거나 감시활동을 폈던 링스헬기 조종사 강태열(39) 소령은 "6·25전쟁 때 몇박 며칠간 잠 안 자고 전투했다는 얘기를 반신반의했었는데 아덴만 여명작전 때 5박6일간 거의 잠을 자지 않았는데도 정신이 멀쩡한 상태로 작전을 한 내 모습에 놀랐다"고 말했다. 사실상 작전의 사령탑 역할을 했던 해군 작전사령부에서도 밤잠 못 자고 매일 기도하는 심정으로 작전에 임했다. 황기철 작전사령관은 아덴만 여명작전을 하루 앞둔 1월20일 부대 식당에서 추어탕이 나오자 "누가 미끄러지면 어떻게 하나? 난 먹지 않겠다"고 했고, 다른 참모들도 추어탕에 입을 대지 않았다.

당시 해군 작전사령부에서 작전처장으로 실무책임을 맡았던 심승섭(50) 1함대부사령관(준장)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위협받았을 때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해야 국민은 군을 신뢰할 것"이라며 "아덴만 여명작전은 북한이 다시 도발했을 때 군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우리에게 알려줬고 군에게 철저히 응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