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영 칼럼] 회사의 이익, 社員의 이익

조선일보
  • 송희영 논설주간
    입력 2012.01.13 23:11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면 국민 또는 사원이 비용 부담, 비정규직에 노동기본권 보장하고 5년·10년 準정규직도 허용하며 경영 전략도 비정규직 중심으로 생각의 축을 이동시켜야

    송희영 논설주간

    어느 중견 그룹이 비정규직 사원 6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서울시는 시청과 산하기관의 비정규직 2800명을 정규직으로 바꿔줄 방안을 찾는 중이고, 정부도 비정규직 9만7000명의 계약 기간을 무기한으로 늘려주겠다고 한다.

    우리는 비정규직 사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결정을 따뜻한 미담(美談)으로 칭송한다. 그 결정은 '용단(勇斷)'으로 포장되고, 용단의 주인공은 인정 많고 나눠줄 줄 아는 인물로 묘사된다. 하지만 비정규직을 구해낼 때 오로지 용단만 필요한 건 아니다. 누군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임금을 올려줘야 하고, 4대 보험도 들어줘야 한다. 유급휴가, 휴양 시설 사용 같은 복지 혜택도 똑같이 제공해야 한다.

    어느 은행의 계산을 보니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인건비 격차가 3.5배였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꿔준다고 해서 부담이 3.5배까지 늘지는 않지만 적게는 20~30%에서 많으면 2배까지 늘어난다고 한다. 정부 당국자와 지방자치단체 장(長)들은 다른 지출을 아끼며 '용단의 비용'을 장만하는 척하지만 최종적으로는 국민에게 세금 부담으로 돌릴 것이다. 경영인들의 비정규직 배려도 회사의 이익잉여금이나 대주주들에게 돌아갈 배당금에서 귀퉁이를 떼어낸 돈으로 감당하는 것처럼 보도된다. 그러나 그대로 믿는다면 큰 착각이다. 미국·일본의 1급 경제학자들은 회사에서 정치적인 이유, 사회적인 압박으로 비용 부담이 늘어날 때 그 비용은 주주나 회사보다는 종업원에게 대부분 전가(轉嫁)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법인세를 올려도 그렇고 의료비 부담을 늘려도 마찬가지다. 얼핏 보면 회사가 떠안는 듯하지만 몇 년에 걸쳐 결국 사원에게 청구서가 돌려지더라는 논문이 즐비하다.

    경영인들이 '용단의 비용'을 조달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정규직 사원을 해고하거나 임금을 동결 또는 삭감하면 된다. 신입 사원 채용을 줄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당사자들에게는 인생이 바뀌는 축복이지만, 큰 틀에서 보면 실업 해소에 플러스 효과를 낼 수 없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비정규직을 구제하겠다고 발언한 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반발하는 글을 인터넷에 대거 올렸다. 서울시가 공무원 채용 숫자를 줄일까봐 견제하는 것이다. 또 혜택을 받는 사람들의 환호 뒤에서 세금이 늘어날까 웅성거리는 납세자들과, 월급이 오르지 않을까봐 경계하는 정규직의 불만이 끓어오른다. 860만명에 달하는 비정규직을 몽땅 정규직으로 바꿀 수도 없는 일이다.

    두 달 전 가동한 도요타자동차의 미국 미시시피 공장은 근로자 임금을 시간당 15달러로 결정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 디트로이트 GM 공장의 시급(時給)은 80달러 이상이었다. 그만큼 세상을 휩쓰는 임금 파괴의 물결은 거세고, 한국서도 임금 구조부터 고용 관행까지 모든 것이 바뀌고 있다.

    우리 기업은 대부분 미국이나 일본에서 자본과 기술을 먼저 들여오는 경쟁 속에서 성장했다. 기술자와 외국어를 말하는 사원을 회사 내에서 속성으로 육성해야만 했다. 그래서 졸업장을 받기도 전에 신입 사원을 집단 채용했고 공장 내 부설 학교까지 만들어놓고 기술자들을 찍어냈다. 고속 성장하던 시절 회사는 사원을 자체 양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연공서열을 중시하고 장기 근무를 유도하며 인재를 붙잡아두는 전략을 채택했다. 종업원은 '회사의 성장이 곧 나의 성장'이라는 믿음에서 저임금을 감수하고 연장 근무와 야근을 참아냈다. 전직(轉職)은 배신행위였고, 20년 근속 사원이 순금 기념품을 받는 관행은 당연한 보상이었다.

    이제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생존 경쟁에 뛰어들면서 '회사의 이익이 바로 사원의 이익'으로 통하던 시대와는 결별했다. 어느 회사나 수시로 인건비 총액을 삭감한다. 회사와 종업원이 힘을 모아 회사를 키우고 사원 스스로도 커가면서 열매를 나눠 먹던 밀월 관계는 끝나가고, 회사와 사원이 한 지붕 아래 다른 방을 쓰는 사이가 됐다.

    이런 시대 변화 속에서 비정규직을 구제하려는 뜻은 가상하지만 그걸로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장기근속을 우대하며 정규직에게 인건비와 복지 혜택을 몰아주는 경영의 틀부터 깨지 않으면 안 된다. 비정규직에게는 노동의 기본권조차 인정하지 않는 법을 바꾸고, 5년·10년짜리 준(準)정규직 계약도 가능하도록 해줘야 한다.

    도쿄 디즈니랜드는 사원 90%가 알바이지만 종업원들 사기는 높고 회사도 걱정 없이 돌아간다. 정부 정책이나 기업 경영 전략에서 정규직 중심을 벗어나 비정규직 중심으로 생각의 축(軸)을 이동시켜야 한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