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데뷔 4년차를 맞는 그의 성공은 다른 배우들에 비해 빠른 편이다. 단역·엑스트라를 해보지 않고 조연으로 나왔던 2009년 드라마 '꽃보다 남자'로 주목받았고, 영화 '위험한 상견례' '커플즈' 등에서 주연을 꿰찼다. 배우 이시영(30). 지난 몇년 '고공(高空)행진'만 해온 그가 최근 KBS 드라마 '난폭한 로맨스(이하 난로)'로 또다시 주인공 자리에 앉았다. 테러를 당할 위기에 놓인 유명 야구선수 박무열(이동욱)을 보호하는 왈가닥 경호원 유은재 역할이다. 10일 '난로'의 촬영장인 서울 여의도 한 오피스텔에서 만난 그는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해 아끼던 긴 머리카락까지 잘랐다"고 했다.
―직전 작품 '포세이돈'에 이어 또 액션 연기다. 힘들지 않나.
"전혀 아니다. 오히려 '포세이돈'을 찍으면서 '액션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포세이돈' 때는 액션에 내가 끌려 다녔다. '내가 이걸 못하는구나. 아직은 할 수가 없구나' 한계를 느꼈다. 이제는 감정이 담긴, 호흡이 긴 액션 연기를 하고 싶다. 우리나라에는 액션 연기에 능숙한 여배우는 많이 없지 않나. 오히려 이번 작품을 하면서 길을 찾은 느낌이다."
―'포세이돈' 전에는 예쁘고 섹시한 역할만 맡았었다. 답답했나.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때는 몰랐다. 왜냐하면 다들 그렇게 하니까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했다. 다이어트도 하고 예쁘게 화장하고 머리도 붙이고…. 부잣집 딸 역할도 많이 들어왔다."
―출연작이 대부분 트렌디 드라마나 코믹영화다. 연기 폭이 좁은 거 아닌가.
"의도적인 건 아니다. 데뷔 초에는 '이렇게 저렇게 다양한 이미지를 보여주자'고 마음먹었지만 지금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다. 내게 주어진 것 안에서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노력하지 못한 탓'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지난해 3월 '전국여자신인아마추어 복싱선수권대회' 48㎏급에서 우승해 '권투 하는 여배우'로 유명해졌다.
"MBC 단막극에서 복서 역할을 맡은 걸 계기로 취미로 배우다 주위에서 소질이 있다고 해 본격적으로 배우게 됐다. 복싱은 나를 변하게 했다. 사람에게 솔직하게 다가갈 수 있게 됐고 나 자신한테 당당해졌다."
-그런데 대회 우승 후에 권투와 관련한 인터뷰를 계속 사양해왔다.
"나에게 갑자기 쏟아지는 과도한 관심에 당황했고 무서웠다. 나는 연기자인데 권투를 한다는 사실이 부각되면 다시 연기를 할 수 없을까 겁이 나기도 했다."
―데뷔 이후 사실상 주연급 역할만 하고 있다. 요인이 뭐라고 생각하나.
"외모나 능력이 뛰어났다기보다 운이 많이 따랐다. 나는 아직 부족하다. 껍데기는 주인공일지 몰라도 아직 (연기로) 인정받을 만한 수준은 아니다. 내가 가진 것보다 더 큰 그릇을 받은 거다. 시청자에게 충분한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주연배우가 되고 싶지만 시간이 필요하다. 드라마 촬영 중 짬짬이 연기 수업도 받고 있고, 고민도 많이 한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파마도 했다.
"'난로'에 나를 걸었다.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끌어나가는 역할이라 마음가짐이 남달랐다. 머리 스타일 시안도 여자 커트가 아니라 남자 커트에서 찾았다. 고집불통처럼 보이기 위해 웨이브도 넣었다."
―전작 '포세이돈'의 성적이 좋지 않았다. '난로'도 초반 시청률이 높은 편은 아닌데.
"부담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마음을 다해 재미있게 촬영하고 있으니까 잘 될 거라고 믿는다."
―성격이 털털하면서 엉뚱한 것 같다.
"가끔 나도 내 성격이 뭘까 생각한다. 나도 잘 모르겠다. 데뷔 후 많이 변하고 있다. 한 가지 절대로 변하지 않는 건 심하게 밝은 거다. 연기자니까 제작진 앞에서 방정떨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난 안 되나 보다' 싶다. 그래도 이건 연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어두운 것보단 낫지 않나."(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