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공감편지] [10·끝] "왕따로 죽을만큼 아픈데… 아무도 네 얘기 안 들어줬구나"

조선일보
입력 2012.01.12 03:07 | 수정 2012.01.13 10:46

From: 동화작가 최태림… To: 자살 기도 고1 金군

중2 때부터 왕따 폭력 당해 우울증에 병원까지 다니다
결국 학원 3층서 뛰어내려… 지금도 자살 유혹 시달려

경기도 A고등학교 1학년에 다니는 김동수(17·가명)군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친구들로부터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 "학급 친구 3~4명이 걸핏하면 욕설을 퍼붓고 때렸다"고 한다. 내성적인 성격의 김군은 우울증에 빠져 병원 치료까지 받았지만, 왕따 폭력은 계속됐다. 급기야 작년 9월 김군은 자살을 시도했다. 다니던 학원 3층에서 뛰어내렸지만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이후 대인 기피증까지 생긴 김군은 철저히 외톨이로 지냈다. 같은 반 친구들도 그의 연락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다. 김군은 집단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보복이 두려워 학교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군의 한 지인은 "지금도 (김군이) 자살 유혹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해” 친구들의 괴롭힘에 못 견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모 군이 다닌 대구의 한 중학교에서 지난해 12월29일 오전 방학식이 열렸다. 방학식에 참석한 각 학년 학부모 대표들이 교감의 추도사를 듣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남강호 기자 kangho@chosun.com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해” 친구들의 괴롭힘에 못 견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모 군이 다닌 대구의 한 중학교에서 지난해 12월29일 오전 방학식이 열렸다. 방학식에 참석한 각 학년 학부모 대표들이 교감의 추도사를 듣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남강호 기자 kangho@chosun.com

나도 왕따 학생이었지
따돌림 당할 만하다는 얘기, 맞을 만하니 맞았다는 시선…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 없었지 잔뜩 웅크리고 혼자 앓았어
하지만 아이야, 이제 난 안다… 왕따 당해도 되는 사람은 없어
자, 이제 터놓고 얘기해보렴… 넌 결코 외톨이가 아니란다

동화작가·교사 최태림
동화작가·교사 최태림

친구야, 미안해. 많이 아팠지? 정말 미안해.

나는 고등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란다. 그리고 이제 첫발을 내딛는 동화 작가이기도 해.

그동안 따돌림을 견뎌내느라고 얼마나 아팠을까. 나도 어렸을 때 따돌림을 당해 본 적이 있어서 조금은 알아. 말도 못 하게 아프더라. 정말 더럽게 아프더라. 그런데 진짜 참기 어려운 것은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는 거였어.

어른들은 피해자인 나한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거든. 친구한테 맞았는데 선생님이 그러더라. 맞을 만했다고. 때린 친구는 장난이었다고 그랬어.

그때부터 나는 장난도 못 받아들이는 속 좁은 아이가 되고 말았어. 어른들은 잘난 척하는 아이는 맞아도 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 누구나 다 한 번쯤은 겪는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다고, 사내자식이 뭘 그까짓 것 가지고 따지느냐고.

그럴수록 나는 빈방에서 웅크리고 있었지. 소라 껍데기에 들어 있는 것처럼 최대한 몸을 구부리고 있었어. 너무 아파서 굽은 등과 허리를 도저히 펼 수가 없었어. 아무리 울어도 몸이 펴지질 않았어. 내 탓이래, 내 탓이래. 계속 그러고만 있었어.

그렇게 혼자 앓으면서 시간을 보냈어. 그 상처는 절대로 치유되지 않았어. 시간이 흘러도 잊어지지 않더라. 아직도 그때의 나는 빈방에서 울고 있거든.

어쨌거나 나도 어른이 되고 말았어. 선생님이 되고 나서 왕따 문제를 다루는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그러는 거야. 대체로 왕따를 당하는 학생이 원인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고. 나는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어.

왕따를 당하는 이유를 조사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잘난 체를 하거나 고자질을 잘하는 학생이 왕따를 많이 당한대. 또, 놀리기 쉬운 어리숙한 학생이 왕따를 많이 당한다고도 해. 심지어 뚱뚱해서, 못생겨서, 냄새나서, 더러워서, 멍청해서 왕따를 당하기도 한대.

세미나에 참석한 어른들은 그러한 학생들이 집단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눈치였어. 도대체 왜?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었어. 화가 나서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말았지. 실제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절반 이상이 왕따 당하는 학생에게 문제가 있다고 응답했어.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시각이 변하지 않으면 어떤 피해 학생도 털어놓을 수 없을 거야. 나처럼, 너처럼 말이야.

나는 다짐을 했어. 나는 그런 어른이 되지 말자, 그런 선생님이 되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어.

몇 년 전, 과제를 발표하는 시간에 한 학생이 알 수 없는 단어를 대면서 '○○○, 사라졌으면 좋겠어'라고 했어. 그 발표를 듣고 반 전체가 깔깔대며 웃더라고. 나는 그 뜻을 알 수는 없었지만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직감했지. 나중에 알고 보니까 ○○○은 어떤 학생의 이름을 거꾸로 해서 만든 별명이었어.

그래서 나는 피해 학생을 불러다가 상담을 시도했어. 피해 학생은 말투가 조금 어눌했어. 그래서 친구들이 따돌렸나봐. 키도 아주 작아서 학생들이 만만하게 보는 것 같았어.

그 학생 역시 절대로 털어놓지 않더라. 마음의 문이 완전히 닫혀 있더라고. 괜찮다고, 괜찮으니 꺼내 놓으라고, 나를 믿으라고 했더니 이런 말을 남기고 상담실에서 나가 버렸어.

"선생님, 제가 학교를 다니는 십몇년 동안 선생님들이 도움이 된 적이 있는 줄 알아요? 천만에요. 선생님도 똑같아요!"

그 아이가 놓고 간 눈물을 보면서 나는 그 자리에 얼어버리고 말았어. 그리고 나도 울었어. 예전의 나를 떠올리면서, 그토록 원망했던 그런 어른이 되어버린 내가 미워서….

며칠 전에 내가 담임을 했던 졸업생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어. 놀라지 마. 왕따를 당하던 그 친구는 아니니까.

미안해. 너희를 그렇게 만들어서. 그렇게 아프게 만들어서 정말 미안해. 그런데 한 번만 믿어주면 안 되겠니? 속는 셈 치고 우리에게 한 번만 말해 주면 안 되겠니? 부탁할게. 제발.

[천자토론] 학교 폭력, 문제는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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