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춘 교수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가슴에 타오르는 분노의 불덩어리를 어디에 던지겠습니까. 바로 우리 사회에 던집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유럽에서 일어난 이민자 폭동이 한국에서도 일어날 것이 불 보듯 뻔합니다."

여성가족부 산하 다문화가족지원센터(부산 사하구) 이사장을 맡고 있는 동아대 이학춘 교수(57·국제학부장)는 현재 학교나 또래 집단 사이에서 배척당하고 있는 다문화 가정 자녀들을 방치하면 결국은 한국 사회의 큰 불안 요소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다문화 가정 자녀들의 한국 적응을 돕기 위해 약 10년 가까이 왕성한 활동을 벌여왔다. 지난해 3월에는 다문화 가정 자녀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현재 서울, 안산, 부산 등 12개 오케스트라에서 다문화 가정 자녀 10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 교수가 다문화 가정 자녀 문제의 중요성을 느낀 것은 1990년대 초반 독일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시절이었다. "독일에 터키 이주민이 많은데, 이주민 자녀 대부분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거리에서 뛰노는 겁니다. 깡패 조직은 이주민 가정 출신 아이들이 다 점령했어요. 이주민 가정 자녀 범죄율이 일반 가정 자녀보다 3배나 높았습니다. 이 문제를 우리나라에 접목해 보니, 남 얘기가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는 2005년부터 본인이 속한 동아대 국제학부 국제학전공 대학생들로 하여금 다문화 가정 자녀들에게 멘토가 되어주는 봉사 활동을 하도록 했다. 제자들로부터 전해 들은 다문화 가정 자녀들의 실상은 놀라운 것이었다. 90% 이상이 게임을 비롯한 '인터넷 중독'에 빠져 있었다. 이 교수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어린 마음에 '엄마(외국인) 때문에 내가 놀림을 당한다'는 생각으로 부모를 엄청나게 미워한다"며 "학교와 가정 모두에 대해 증오심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문화 가정 자녀 문제를 이대로 방치하면 프랑스미국 LA 등지에서 일어난 이민자 폭동 사태가 한국에도 재연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고 했다. 2005년 프랑스 파리 외곽 지역에서 아프리카 이민자 2세 소년이 경찰의 검문을 피하려다 감전사한 것을 계기로, 프랑스 전역에서 이민자 자녀들의 집단 소요 사태가 벌어졌다. 소외됐던 이민자 자녀들이 그동안 쌓였던 증오와 불만을 표출한 사건이었다.

이 교수는 이런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선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자긍심을 갖고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제안했다. 우선 음악과 스포츠 등 다양한 취미 활동 등을 통해 다문화 가정 자녀들에게 자존감과 자신감을 키워줘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이 교수가 1년 가까이 오케스트라 활동을 한 다문화 가정 자녀 80명의 변화를 조사했더니, 95%가 '음악을 배운 이후 자신감이 생겼다'고 답했다. 반 친구와 잘 어울리게 됐다는 학생도 72.9%에 달했다.

이 교수는 또 다문화 가정 자녀들을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인적 자본으로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컨대 기업이 해외 지사 근무 인력을 뽑을 때 현지 언어에 유리한 다문화 가정 자녀를 우선 채용하거나 어려서부터 '미래 사원'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도록 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천자토론] 다문화 가정 이룬 이민자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