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 해남·완도의 斷想

조선일보
  • 김대중 고문
    입력 2012.01.09 23:22

    2박3일 여행길에서 본 것은 사람들의 빛나는 얼굴, 남들이 100년 걸려 얻은 것들 우린 당대에 해치워… 이젠 과속질주 대신 숨고르며 각성하고 정비하는 데 힘 모아야

    김대중 고문
    지난주 친구들과 2박3일 일정으로 전라남도 해남, 완도, 강진을 다녀왔다. KTX로 목포로 가서 전세버스를 빌려 버스를 탄 채로 카페리와 연륙교를 이용해 섬과 섬을 오가며 땅끝과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의 궤적을 밟았다.

    우선 편안한 여행이었다. 비수기인 탓도 있었겠지만 추운 날씨임에도 아무런 불편이 없을 정도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었다. 어느 여행 선진국 못지않았다. 문득문득 십수년 전 여행했던 일본의 시골 어촌을 보는 듯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부러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더욱 기분 좋은 여행이었다. 볼거리가 훌륭해서라기보다 사람들의 잘사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였다. 바다도, 산도, 하늘도, 가옥의 지붕도, 무엇보다 사람들의 얼굴이 반짝반짝 빛났다.

    완도의 경우, 주민들이 주로 양식업에 종사해서인지 바다가 '옥토(沃土)' 같았다. 바닷물이 마셔도 괜찮을 것 같을 정도로 맑고 깨끗했다. 이곳 사람들의 생명줄이라 온 주민이 애쓴 결과이리라. 때마침 발표된 전라남도의 보고서는 연간 1억원 이상 소득을 올리는 부농(富農)이 1년 새 37%나 늘어났고, 5000만원에서 1억원 미만도 26.4% 증가한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오직 한 길을 걸으면서 창의적 연구와 노력으로 차별화·고급화를 시도한' 개별 농가의 노력 외에 유기농 농축산업 육성 등의 정책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결국 무엇이든 지킬 가치가 있도록 만들어 주면 주민들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정치의 요체임을 깨닫게 한다.

    그런 와중에 서울에서 들려오는 뉴스들은 온통 정치의 비리와 폭로, 정쟁과 당파싸움의 끝없는 연속이었다. 미국중국의 위치가 바뀌면서 한반도의 안보(安保)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는데 우리 정치는 오로지 싸움뿐이다. 한반도 북쪽에 독재와 세습이 횡행하고 수천만 동포가 기아와 공포에 떨고 있는데, 남쪽의 지도부는 이념으로 갈려 권력투쟁에 여념이 없어 보인다. 반짝반짝 빛나는 남녘의 하늘 북쪽은 온통 더럽고 어둡고 침울로 가득할 뿐이다.

    진부한 얘기지만 우리는 그동안 너무 빨리 달려왔다. 다른 나라들이 100년, 200년 걸려서 얻은 것들을 우리는 당대(當代)에 해치운 듯했다. 책보자기를 허리에 두르고 십리 이십리를 걸어 학교를 다녔던 사람이 당대에 승용차, 비행기, IT에까지 뛰어오른 초고속의 나라는 아마도 이 지구상에 우리가 처음일 것이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생략해야 했고 들쭉날쭉 불균형한 격차를 감수해야 했다. 국민은 저만치 앞서 가는데 정치는 제자리걸음인 경우도, 또는 그 반대의 경우도 혼재(混在)한다. 어느 것은 첨단을 가고 어느 것은 아직도 아날로그에 머문 것도 다반사다.

    우리가 재빨리 깨어나야 할 절박한 시기에 우리는 여러 선구자·선각자들의 인도를 받았다. 산업계, 종교계, 교육계, 언론계, 정계에 큰 인물들이 나와 우리를 이끌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지도자도 없고 선각자도 없다. 나라에 큰 인물도 없고 '어른'도 없다. 어른이 있을 법해도 끌어내리고, 나설 만한 사람도 나서지 않는다. 세태가 이쯤 되니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 세상의 이목을 끄는 정치 몰이꾼들이 등장한다. 단판에 부자가 되고 단판에 거지가 되기도 한다. 쌓이는 것이 없고 쌓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것 모두가 과속질주, 과잉 자신감, 과잉 노출의식의 결과다. 무엇을 얻기 위해 전력질주하다가 스톱 사인을 지나친 것이다.

    80여년 전 춘원 이광수(李光洙)가 쓴 '민족개조론'을 읽으면 우리는 모두 슬퍼지기 마련이다. 우리 민족이 그렇게 비참하고 천박했었는가 하는 점이 슬프고, 그래서 나라를 빼앗긴 것이 슬프고, 옳은 소리를 옳지 못한 시기에 내놓은 작가의 시대착오가 슬프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 글의 시대적 상황과 배경을 가리고, 또 그 글을 쓴 작가의 이름을 가리고 다시 읽어보면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도 있다. 민족을 '개조'하기보다 민족을 '개선'하는 길을 찾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 뜻에서 우리는 숨고르기의 시간이 필요하다. 너무 빨리 달려오느라고 여기저기 불거진 과속과 저속의 불균형을 조절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완도 등 전남의 '여유'를 전국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른 곳의 아픔과 고통과 좌절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나라 전체가 숨고르기를 하면서 각성하고 정비하는 데 합심하면 이번 여행에서 느낄 수 있었던 남녘의 고즈넉함을 우리는 전국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완도의 고금도에 있는 충무사의 월송대는 충무공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후 83일간 그 유해를 안치했던 가묘(假墓)의 장소다. 이곳에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려는 남해안 일대의 백성과 수군(水軍)의 충의(忠義)를 오늘의 세상에 견주어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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