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재벌 기업의 투자를 늘려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며 2009년 폐지했던 공정거래법상의 출자(出資)총액제한 조치를 3년 만에 다시 부활시킬 것을 검토 중이다. 출자총액제한(출총제)은 재벌들에 순자산 규모의 일정 비율 이내에서만 계열사에 출자하도록 규제하는 제도로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을 막는 효과가 있다. 민주통합당의 여러 당권 주자도 출총제 부활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일부 후보는 특별법 제정을 통한 재벌 해체까지 들먹이고 있어 재벌 개혁은 앞으로 정치권의 주요 이슈가 될 전망이다.
올 1월 현재 55대 재벌(대기업 집단)의 계열사는 1629개로 3년 사이 492개나 크게 늘었다. 2~3일마다 한 개꼴로 회사를 늘려온 데다, 입시학원·자동차정비업은 물론 커피체인점·꼬치구이 전문점·자전거 판매 등 서민층 생활의 터전인 자영업에까지 가리지 않고 손을 뻗쳤다. 그렇다고 재벌 계열사가 늘어난 덕분에 일자리가 늘지는 않았다. 출총제가 사라진 2010년 1년 사이에 종업원 300명 이상 대기업의 취업자 숫자는 총 195만2000명으로 3만1000명 감소했다. 출총제 부활 움직임은 외국 회사들과 신기술로 승부하기보다는 좁은 국내 시장에서만 활개치며 영토 확장을 거듭해온 재벌 스스로가 불러온 자업자득(自業自得)의 결과다. 1987년 처음 도입된 출총제는 외환 위기 직후 1998년에도 투자를 촉진한다는 명분으로 폐지했다가 2001년에 부활됐다. 재벌의 무한 확장에 빗장을 걸어보기도 하고 풀어주기도 해봤지만 대기업의 일자리 창출 기능은 약화되기만 했다. 이 상황에서 그럴 바에야 재벌이 영세 업종에 마구잡이로 침투하는 것이라도 막아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갖게 됐다.
하지만 문어발 확장을 막는 것으로 재벌 개혁에 대한 국민 욕구가 충족될지는 미지수다. 오너가 있는 35대 재벌의 총수 일가 지분은 평균 4.4%에 불과하지만, 총수의 아들·딸·처남·사돈들까지 총출동해 신규 투자와 임직원 인사 등 모든 의사 결정에서 초법적(超法的)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재벌 개혁은 오너와 그 가족의 독단(獨断)을 견제하는 일부터 중소 협력업체들과 동반 성장, 대주주와 임직원 간의 성과 분배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깊이 있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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