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왕따 폭력에 보름째 침묵

조선일보
  • 유석재 기자
    입력 2012.01.04 03:03

    한국교총은 성명 잇단 발표
    작년 성명·논평 75건 낸 전교조, 왕따폭력 관련은 한 건도 없어
    "학생인권조례는 환영 논평내더니"… 내부서도 "전교조는 뭐하나" 비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왕따(집단 괴롭힘) 폭력' 사태에 대해 보름째 침묵을 지키고 있다. 지난달 20일 대구의 한 중학생이 친구들의 괴롭힘을 못 이겨 자살한 이후 '왕따 폭력'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지만, 국내 대표적 교원단체 중 하나인 전교조는 3일까지 이에 대해 본부 차원의 성명서나 논평조차 내지 않는 등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전교조 내부에서도 '이상한 침묵'이라는 비판을 제기할 정도다.

    전교조 본부가 이번 사건 발생 이후 홈페이지에 올린 성명서는 '일제고사 방식의 전국연합학력평가 폐기하라' '교과부와 시도교육청은 현장 실습, 취업제도 개선하라' '외국교육기관 국내 유치 활성화 추진에 대한 입장' '교원능력개발평가 결과 및 활용 방안 발표에 대한 입장' 등 모두 4건이었다. 왕따 폭력 사건이 일선 학교와 학생, 학부모들을 온통 뒤흔들어 놓고 있지만 전교조는 사실상 이를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같은 교원단체인 한국교총이 지난달 26일 '연이은 학교 내 집단따돌림 및 폭력사건에 대한 성명'을 발표하고, 28일에는 정부를 상대로 학교 폭력 대책 및 학생지도권 강화를 요구하는 등 왕따 폭력 사태에 대해 적극 개입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학교폭력에 대한 전교조의 '침묵'은 이번뿐만이 아니다. 장석웅 현 위원장이 취임한 지난해 1월 이후 전교조 본부는 모두 37건의 성명서와 38건의 논평을 발표했으나, 이 중 왕따폭력과 관련된 것은 단 한 건도 없었다.

    같은 기간, 정부가 추진한 교원평가 제도에 반대하는 성명서와 보도자료는 모두 6건이었다. 때문에 교사들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문제에는 민첩하게 대응하면서, 학교 내 약자의 피해에는 무관심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전교조의 이런 태도는 내부에서도 도마에 올랐다. 전교조 소속인 서울 노원구의 중학교 교사는 지난 2일 전교조 홈페이지 ‘조합원마당’에 올린 ‘아이들은 죽어나가는데, 그 흔한 성명서 한 장 없나?’란 글에서 “서울 학생인권조례안 통과를 환영한다고 논평을 낸 대변인 선생님은 어디 가신 걸까”라며 “이게 우리가 만든 전교조인가.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라고 썼다. 3일까지 모두 5명의 전교조 조합원이 이 게시물에 지지 댓글을 달았다.

    전교조는 이런 지적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한 본지의 취재에 대해서도 입장 표명을 거부한 채 함구했다. 왕따 폭력 사태 와중에 전교조의 입장은 사실상 실종된 셈이다.

    교육계에선 왕따 폭력에 대한 전교조의 침묵이 진보·좌파 진영이 추진해 온 학생인권조례의 명분과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학생의 기본권을 신장한다는 취지로 추진해온 학생인권조례가 교사의 학생지도를 지금보다 더 어렵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인권조례가 왕따 폭력 사태에 대해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전교조가 의식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서울 마포구의 고교 교사 A씨는 “전교조가 이번 학교 폭력사태에 목소리를 낼 경우 오히려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세력의 논리에 끌려갈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 같다”며 “그래도 왕따 문제에 대해 전교조가 입을 닫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지나치게 교사들의 권익만 강조하는 전교조 집행부의 교사 이기주의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최욱 경인교대 교수는 “교사들의 학생지도를 기피하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면서 “이런 사실을 잘 아는 전교조 집행부가 교사들이 골치 아파할 문제는 아예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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