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김정일 사망 뒤 들뜬 중국

    입력 : 2012.01.03 23:29

    최유식 베이징 특파원

    신의주와 맞닿은 북·중 국경도시 단둥(丹東) 외곽에는 '바산(八三)'이라는 유류 저장소가 있다. 중국북한에 지원하는 원유를 저장하는 곳이다. 중국은 이 원유를 국제 시세의 5분의 1도 안 되는 싼 가격에 해마다 50만t가량 북한에 보내주고 있다. 북한의 한 해 석유 소비량의 절반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북한이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을 시인하면서 2차 북핵 위기가 불거졌던 지난 2003년, 바산의 송유관 밸브가 3일간 차단됐다. 중국은 송유관 수리를 공식 이유로 댔지만, 미국 요청에 따른 대북 압박 조치였다는 게 당시 북한 전문가들 사이의 정설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 뒤 중국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북한은 2006년 1차 핵실험을 하면서 불과 20분 전에야 중국에 그 사실을 통보한 것이다. 중국 외교부는 "북한이 감히 핵실험을 실시했다"며 격노했다. 마침 2005년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방북과 2006년 초 김정일의 답방으로 양국 관계가 호전됐다고 본 시점이어서 중국은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됐다.

    김정일이 집권한 17년간 북·중 관계는 갈등의 연속이었다. 북·중 국경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중조(中朝·중국과 북한) 우의(友誼)'라는 구호가 무색할 정도였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김정일은 중국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한중(韓中) 수교에 대한 배신감을 거침없이 표출했다. 북한 교과서에서 중국의 6·25 참전 사실을 삭제했고, 판문점에서 중국 군사대표단을 철수시켰다. 대만과 교류하면서 중국의 아픈 곳을 건드리기도 했다.

    김정일 집권 이후 첫 방중(訪中)이 이뤄진 2000년대 초반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북한은 중국의 개혁·개방을 '수정주의'라고 비난했고, 중국을 '믿을 수 없는 나라'로 낙인찍었다. 중국이 보내는 원조 물자와 식량은 '미국을 막아주는 데 대한 당연한 대가' 정도로 여겼다. 2003년 북핵 6자회담이 시작된 뒤에도 중국은 미·중 사이를 오가는 김정일의 노회한 외교술에 끌려다녀야 했다. 김정일의 건강이 나빠지고 후계 승계가 본격화된 지난 3년이 그나마 북·중 관계가 무난한 시기였다.

    이런 악연 때문인지 김정일 사망 이후 중국 분위기는 북·중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떠있다. 전문가들은 "역사적인 기회가 왔다. 이번에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에 나서도록 확실하게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후진타오 주석은 중국 최고 지도부 중 가장 먼저 주중 북한 대사관을 찾아 조문한 데 이어, 지난달 31일 김정은에게 최고사령관 취임 축하 전문을 보냈다. 중국의 원조 식량과 생필품을 실은 트럭은 줄줄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고 있다. 김정은의 북한을 '말 잘 듣는 친중(親中) 정권'으로 만들려는 포석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으로 나서게 하겠다는 뜻이라면 이런 조치가 우리 국익과도 어긋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 커질 중국의 대북 영향력은 한반도 통일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김정일 사망은 우리의 대중(對中) 외교에 새로운 과제 하나를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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