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의 김종인 위원은 2일 한나라당이 이달 내 인적 쇄신을 결단하지 않으면 비대위는 의미가 없어질 것이라며 그 경우 비대위원직을 사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 정권 실정(失政)에 책임 있는 친이(親李)와 친박(親朴) 의원을 속히 솎아내라고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압박한 것이다.

비대위 이상돈 위원이 이상득 이재오 의원과 전직 당대표들에 대한 심판을 거론한 이후 홍준표 전 대표가 김종인 위원의 18년 전 뇌물 수수 사건과 이상돈 위원이 천안함이 설계보다 무거운 무장을 한 게 침몰의 원인일 수도 있다고 했던 발언을 문제 삼아 두 사람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친이계 장제원 의원도 "두 사람이 물러나지 않으면 또 다른 두 비대위원의 비리를 폭로할 수도 있다"고 했다. 당을 확 바꾸기 위해 만들었다는 비대위가 오히려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라 버렸다.

비대위는 지금부터라도 큰 혁신과 작은 쇄신을 구분해서 접근법을 달리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지금 여야를 포함한 우리 정당 정치 전체가 국민의 불신을 받고 있다는 큰 틀의 문제와 함께 한나라당의 지난 3년 업보(業報) 때문에 빚어진 한나라당 고유(固有)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처지다. 하나는 우리 정치, 특히 여권의 제도와 그 운영의 틀을 뜯어고쳐야 할 문제로 연결되고 다른 하나는 여당의 정치적 파산(破産)을 불러온 정치인들과 식상한 얼굴들을 교체하는 인적 쇄신과 관련된다.

이 정권은 여권의 한 축(軸)이면서 동시에 행정부를 견제해야 할 입법부의 핵심 기둥인 집권당을 당정회의라는 제도를 통해 대통령의 지시를 떠받드는 거수기로 만들어 버렸다. 한나라당을 포함한 역대 집권당이 집권하고 나서 얼마 후면 반신불수(半身不隨)의 정치적 무능력자 집단으로 매도당한 원인이 여기에 있다. 비대위는 이런 문제를 비롯한 정치제도의 제도적 결함을 수선할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한편 현재 여당의 '중진' '핵심'이라는 인사들에 대한 국민의 염증과 반발이 오래 계속되고 있는데도 그들이 계속 버텨온 것은 당 지도부와 각종 공직 후보를 뽑는 과정에서 국민의 뜻은 뒷전으로 밀리고 일부 주류(主流) 실세들의 담합(談合)이나 낙점식(落點式) 공천방식이 계속돼 왔기 때문이다. 비대위의 또 다른 사명은 이런 공천 방식을 혁명하는 것이다. 혁명이 성사되면 국민이 지긋지긋해하는 얼굴들도 자동적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비대위가 큰 칼, 작은 칼을 제때 제대로 골라 휘두를 줄 알아야 한다. 지금 같아선 비대위 목부터 날아갈 듯하다. '실세'나 '중진'들도 반격전을 구상하기보다는 당이 살기 위해 내 몸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내놓겠다는 흉내는 내야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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