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읊었다. 수락석출(水落石出). "물이 줄어드니, 물속에 잠겼던 바위가 드러난다". 2011년은 그동안 수면 아래 잠겨 있던 갈등이 한꺼번에 다 드러난 해가 아니었을까. 지난해를 압축할 수 있는 키워드를 물었을 때 한양대 국문과 정민 교수의 대답이었다.
2011년의 키워드와 2012년의 키워드를 문화·체육계 인사 101명에게 물었다. 사람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단어들이 돌아왔는데, 지난해를 갈등과 분노가 폭발한 해로, 새해 역시 '현기증'이 일 만큼 시계(視界) 제로로 보는 대답이 많았다.
2011년 키워드
▲화·불통·분노
"사회 모든 영역에서 화가 분출"(김찬 문화재 청장)한 해였다. "양극화의 심화, 빈곤의 보편화와 만성화, MB에 대한 실망"(전상인 서울대 교수)을 큰 이유로 꼽았다. "대통령부터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모두 뭘 해야 할지 모르고 정신없었던 1년"(김민 바이올리니스트)이라고 했고, "모든 것이 일방통행, 불통이었던 한 해"(도법 스님)라는 표현까지 있었다. 하나의 실재를 놓고 동상이몽(同床異夢) 해석이 극에 달한 해였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따른 일방적 판단들. "4대강, FTA, 안철수 등에 대한 아전인수"(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가 그 예였다.
▲'안철수'와 '나는 꼼수다'
화와 불통, 분노가 고유명사로 나타난 현상이 '안철수'와 '나는 꼼수다' 열풍이라는 대답이 많았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안철수 현상은 성공과 공정성과 따뜻함을 다 갖춘 메시아적 리더십에 대한 갈구"라면서 "MB세력과 재벌이 상징하는 한국 보수기득권층의 천민성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와 환멸의 소산"이라고 해석했다. 또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 역시 "올 한 해 가장 주목할 인물이었다"고 안철수 교수를 압축했다. '나는 꼼수다' 열풍 역시 그 자체의 재능과 인기라기보다는 이런 분노의 파생상품이라는 지적이다. 서울대 정치학과 강원택 교수는 "MB정부의 실정, 부정부패에 대한 불만, 젊은층의 좌절"을 '나는 꼼수다'열풍의 원인으로 꼽았다. 하지만 평가는 엇갈린다. 윤평중 교수는 이 두 가지 현상에 대해 "민주주의의 포퓰리즘적 속성과 연계된 한국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분석하면서 "특히 '나는 꼼수다'는 한국 공론장을 확대시킴과 동시에 왜곡시키는 야누스"라고 지적했다.
▲위로와 공감
2011년은 젊은 세대와의 공감을 시도했던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한 해. 김 교수뿐만 아니라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듀란킴 에이전시 김두환 대표 등 '위로'와 '공감'을 키워드로 제시한 학자와 출판계 인사가 많았다. 물론 '공감'이 안 되었기 때문에 '공감'이 화두가 됐다는 해석이 강했다. "계층, 세대, 국민과 정부 사이의 공감이 잘 안 된 한 해. 공감해야 할 주체들이 서로 잘 안 됐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공감에 대한 요구가 높았다"(출판평론가 표정훈)는 얘기였다. 같은 맥락에서 '소통'을 제시한 인사도 있었다. "무엇도 제대로 던져주지 못하고, 제대로 받지 못한 1년이었다. 소통이 절실했다"(설도윤 설앤컴퍼니 대표)고 했다.
2012년 키워드
▲현기증
올해는 총선과 대선이 함께 맞물려 있는 한 해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 러시아도 최고 지도자가 바뀌는 2012년이다. 2011년도 어지러웠지만, 새해는 갈등과 분노가 대폭발을 일으킬 것으로 우려하는 지식인들이 많았다. 문학평론가인 인하대 국문과 김동식 교수는 '현기증'을 키워드로 내세웠다. 그는 "이제 논쟁이나 대화나 풍자의 수준을 넘어 아예 직설화법의 시대가 될 것 같다"면서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 서 있는가를 고민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했다. "4개국 선거에 김정일 사망까지 겹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격동의 해"(이원복 덕성여대 교수) "어떻게 넘느냐에 따라 혼란과 안정이 좌우될 분수령의 해"(손진책 국립극단 예술감독)라는 것이다. 현기증의 영어 단어는 버티고(vertigo). 이분법적 대결과 격랑의 가속화 속에서, '버티기' 그 자체를 고민해야 할 2012년이 될지 모른다.
▲인내와 지혜
역설적으로 공감을 염원했던 2011년처럼 종교계 인사들은 이럴 때일수록 인내와 나눔, 지혜와 행복을 키워드로 제시했다. 천주교 정진석 추기경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 삶은 지혜로워야 한다. 2012년에는 우리 국민들이 더 지혜로워지고 행복해지기를 기원한다"고 했고,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 역시 '지혜'를 키워드로 제시하면서 "마음속의 공심(公心)의 눈, 임진년 새해에는 편견과 집착을 버리고 지혜의 눈으로 나아가자"고 말했다. 서울신학대 총장인 유석성 목사는 한국의 선거와 김정일 사후 남북관계와 세계평화를 생각할 때 '상생과 평화'가 가장 소중하다고 했다. 종교학자인 울산대 정진홍 석좌교수는 누구나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독선'에서 벗어나 자기를 되살피는 '자성'을 키워드로 삼자로 제안했다. 남을 탓하기보다 스스로 먼저 돌아보자는 얘기다.
☞ 설문 참여해주신 분들(가나다 순)
1. 강원택 서울대 교수 2. 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3. 고영은 출판인회의 회장 4. 권재관 개그맨 5. 기성용 축구선수 6. 김광필 KBS 시사교양국 PD 7. 김난도 서울대 교수 8. 김대진 수원시향 지휘자 9. 김동식 인하대 교수 10. 김두환 듀란킴에이전시 대표 11. 김명섭 연세대 정외과 교수 12. 김민 바이올리니스트 13. 김병만 개그맨 14. 김병종 서울대 미대 교수 15. 김성구 샘터사 대표 16. 김성주 방송인 17. 김성중 소설가 18. 김승회 서울대 교수 19. 김아린 레스토랑 컨설턴트 20. 김연아 피겨스케이팅 선수 21. 김영곤 북이십일대표 22.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 23. 김영민 SM엔터테인먼트 대표 24. 김영섭 SBS 드라마국장 25. 김웅 드럭레코드 대표 26. 김은조 블루리본서베이 편집장 27. 김인철 중앙대 교수 28. 김정운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29.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30. 김주연 한국문학번역원장 31. 김찬 문화재청장 32. 김한민 영화감독 33. 김현태 디자인진흥원장 34. 김호기 연세대 교수 35. 도법 스님 36. 문채원 배우 37. 바비킴 가수 38. 박금준 그래픽 디자이너 39. 박맹호 민음사 대표 40.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 41. 박시형 쌤앤파커스 대표 42. 박영규 배우 43. 박은주 김영사 대표 44. 박지영 KBS 예능PD 45. 박태환 수영선수 46. 백가흠 소설가 47. 백건우 피아니스트 48. 백영옥 소설가 49. 버스커버스커 록밴드 50. 서지문 고려대 교수 51. 설도윤 설앤컴퍼니 대표 52. 손예진 배우 53. 손정완 패션 디자이너 54. 손진책 국립극단 예술감독 55. 송승환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 56. 송창의 tvN 본부장 57. 심재명 명필름 대표 58. 안숙선 국악인 59. 오광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60. 유석성 서울신학대 총장 61. 유열 가수 62. 유홍준 명지대 교수 63. 윤평중 한신대 교수 64. 이광만 간삼건축 회장 65. 이대호 야구선수 66. 이승엽 야구선수 67.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68. 이우환 화가 69. 이원복 덕성여대 교수 70.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71. 이주헌 미술평론가 72. 이지성 작가 73. 이창주 빈체로 대표 74. 임영웅 산울림 대표 75.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 76. 전병금 목사 77. 전봉관 카이스트 교수 78. 전상인 서울대 교수 79. 정명효 여행지 AB로드 편집장 80. 정민 한양대 교수 81. 정상진 씨너스AT9 대표 82. 정성진 목사 83. 정욱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84. 정재형 동국대 교수 85. 정종섭 서울법대 학장 86. 정진석 추기경 87. 정진홍 울산대 석좌교수 88. 조용헌 저술가 89. 주경철 서울대 교수 90.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 91. 최불암 배우 92.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93. 최정심 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장 94. 최태지 국립발레단 단장 95. 표정훈 출판평론가 96. 하정우 배우 97. 하지현 의사 98. 함인희 이대 교수 99. 홍명보 올림픽축구대표팀 감독 100. 홍승완 패션 디자이너 101. 황병기 이화여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