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스포츠에서 '별명'은 인기의 척도다. '테리우스'(축구선수 안정환의 별명)처럼 이름 못지않게 유명한 애칭으로 기억되는 스타가 있는가 하면, 평생 별명 하나 못 얻고 은퇴하는 선수도 많다.

그런 점에서 프로야구 김태균(29·한화)은 팬들의 사랑이 남달랐던 선수다. 2009년 말 일본에 진출하기 전까지 '김꽈당'(1루로 뛰다가 넘어져서), '김두목'(산적 두목같이 생겨서) 등 숱한 별명이 따라다녔다. 아예 '김별명'이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그런 김태균에게 올여름 달갑지 않은 별명이 추가됐다. 이름하여 '김도망'. 그는 일본 프로야구 시즌 도중에 한국에 들어오더니 올해 7월 갑작스레 퇴단을 선언했다. 팬들은 "부상에 시달렸고, 일본 대지진 때 충격을 많이 받았다"는 김태균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이달 12일 역대 프로야구 최고 연봉(15억원)을 받고 한화에 재입단하자 "과하다"는 여론도 일었다.

김태균은 올여름 갑작스레 일본 프로야구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모든 걸 바쳤던 야구가 싫어질 정도로‘용병’생활을 견디기 어려웠다”며“야구를 계속하고 싶어 일본을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반년 간의 휴식 끝에 역대 최고 연봉(15억원)을 받고 친정팀 한화에 복귀한 김태균은 내년 시즌 명예회복을 위해 칼을 갈고 있다.

◇"지진? 부상? 이유는 따로 있었다"

23일 대전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김태균은 일본 도전 포기에 대해 "전혀 후회가 없다"며 "나는 지금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아직도 납득 못 하는 팬들이 많다고 하자 김태균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지진은 일본을 떠나게 된 이유 중 극히 일부입니다. 저는 단지 제가 평생 좋아하던 야구가 싫어질까 봐 그게 두려웠어요. 이런 말 하면 또 뭐라고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입단 계약 후 처음 일본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숨이 탁 막혔어요."

김태균은 "나는 자유스럽게 즐기는 스타일"이라며 "나와 전혀 다른 일본 야구 분위기에 적응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김태균은 첫해 4번 타자로 타율 0.268, 21홈런 92타점을 올렸다. 첫해로선 무난한 성적이었다. 전년도 리그 5위였던 지바 롯데는 그해 일본시리즈 우승까지 했다. 그러나 김태균은 전혀 우승의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팀에서) 누구도 내게 '잘했다' '고생했다'라고 어깨를 두드려주지 않았다"며 "용병(傭兵)은 팀 성적과 관계없이 무조건 자기 성적을 내야 하더라"고 했다.

이때부터 스트레스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야구를 하면서 늘 '팀 성적이 개인보다 우선'이라고 여겼는데, 그걸 한순간에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타석에서도 흥이 나지 않았다. 일본 선수가 홈런을 치면 코치들이 하이파이브를 청했지만, 자신이 치면 '용병이니까 당연하다'는 듯 손도 내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내가 성격이 굉장히 소심하고 예민한 편이라 조그만 소리가 들려도 잠도 못 잔다"며 "조그만 일들이 쌓여가면서 내 모든 걸 바쳤던 야구가 점점 싫어졌다"고 했다.

◇"모든 것은 내가 결정, 욕은 나 혼자 먹겠다"

2011시즌을 앞둔 김태균의 마음은 이미 반쯤 일본에서 떠난 상태였다. 게다가 개막을 앞두고 대지진이 일어나더니, 개막 후 허리·손목 부상에 시달렸다. 김태균은 "마음이 떠나니까 자꾸 여기저기 부상이 왔다"며 "더는 팀에 남아봐야 도움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2012년에 보장된 연봉·옵션 2억5000만엔(약 37억원)도 포기했다.

"한국에 돌아올 때 욕먹을 것은 다 예상했어요. 저로선 야구를 완전히 포기할 수도 있었던 인생의 갈림길에서 내린 선택이었어요. 그러니 앞으로도 내게 향하는 비난은 어떠한 것도 감수할 생각입니다."

김태균은 가족에 대한 비판은 자제해달라고 부탁했다. 김태균은 "나는 평생 모든 결정을 스스로 내렸고, 이번 선택도 내가 한 것"이라며 "아내(김석류 전 KBS N 아나운서)에 대한 근거없는 비난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연봉 15억… 도루도 20개 이상 해야죠"

김태균은 요즘 대전구장에서 재활·신인 선수들과 함께 러닝, 캐치볼 훈련을 반복하고 있다. 웨이트 트레이닝도 따로 한다. 김태균은 "반년 정도 쉬었더니 허리·손목 상태가 좋아졌다"며 "무엇보다 마음이 편안하다"고 했다. 김태균은 프로야구에 처음 연봉 10억원 시대를 연 것에 대해 "구단의 배려에 정말 감사드린다"며 "홈런·타율·타점은 기본이고, 그동안 하지 않았던 도루도 한 20개 정도는 해야 몸값을 하는 거 아니냐"며 웃었다. 그는 도루 능력을 키우기 위해 러닝과 웨이트훈련을 집중적으로 하느라 근육통까지 왔다고 털어놨다.

김태균이 떠난 2009년을 기점으로 한화는 많이 바뀌었다. 송진우·정민철·구대성 등이 다 은퇴했고,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세대교체가 한창이다. 김태균은 "이젠 중고참으로서 선·후배들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야 할 나이가 됐다"며 "전지훈련에 가면 군기반장 노릇을 제대로 해서 한화를 5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끌어올리는데 한몫하고 싶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