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명예교수·전 외무부 장관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이 예상했던 것보다도 빨리 왔다. 김정일 사후 베일에 싸인 북한의 정치·안보·경제가 어떻게 전개될 것이며 남북관계가 어떻게 진전될 것인지 정확하게 점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당시와 현재의 정황을 비교함으로써, 오늘날 김정일 사망의 의미를 좀 더 정확하게 분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994년 7월 8일 정오 북한이 '중대 방송'을 통해 김일성 주석의 사망을 보도한 것은 필자가 그달 25일로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다른 안보관계 장관들과 회의를 하고 있던 때였다. 발표의 형식이 흡사한 것을 빼놓고는 두 사람 사망의 성격과 정황에는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

첫째, 김일성은 북한 주민이 대체로 '어버이 수령'으로 떠받들었고 그의 죽음에는 진정으로 애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은 그의 사후에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표어로 김일성을 받들었다. 대조적으로 김정일에 대한 이같은 찬송은 상상하기 어렵다. 오히려 그는 1990년대 중반의 200만이 넘는 아사자를 낸 기억으로, 2009년 11월의 실패한 화폐 개혁과 배급 중단 등에서 온 고난에 대한 책임자로 주민이 등을 돌리고 있는 사람이다.

둘째,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까지 김정일은 이미 후계자로 지명되어 20여 년간 준비와 훈련의 과정을 쌓아왔다. 대조적으로 김정일의 후계자 김정은은 2010년 9월에야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선임되면서 김정일의 사망까지 15개월 정도의 견습기간을 거쳤을 뿐이다.

셋째, 김일성은 한국전쟁을 일으킨 사람이기는 하나 노년에 와서 공산세계가 와해되는 것을 목격하며 남한과 타협하고 핵문제에 있어서도 협상을 시도하려던 사람이다. 그는 1994년 핵문제로 한반도에 긴장상태가 고조될 때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하고 그를 통해서 김영삼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 제안을 수락하는 메시지를 서울에 보낸 바 있다. 대조적으로 김정일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과 제조에 앞장서고 핵을 흥정과 협박의 수단으로 사용했던 사람이다. 그는 선군(先軍)정책을 통치 구호로 삼고 군부 인사들을 높은 정치서열에 기용하고 남한에 대하여 천안함·연평도 공격 등의 도발을 감행했다.

넷째, 1994년은 한국과 중국이 외교관계를 수립한 지 2년이 되는 해로 양국은 밀접한 협력 관계를 갖고 있었다. 핵문제와 관련해서도 미국과 일본을 포함한 한국의 동맹국·우방국은 물론 중국·러시아 등도 북한에 대하여 적지 않은 압력을 가하는 시기였다. 반면 2011년에 와서 주변국들은 북한의 핵무기에 대하여 피로감을 느낀 나머지 전력으로 압력을 가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정권의 붕괴를 방지하고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일정 정도의 핵무기를 용인하면서 북한에 대한 보호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대조적 상황을 놓고 보면 김정일 사후 북한이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이냐에 대한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먼저 김정은이 후계자로 지정은 되었으나 그가 김정일처럼 도전받지 않는 강력한 권력자로 부상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군부가 득세할지, 당·정의 지도자들이 부상할지 모르지만 김정은을 명색뿐인 수령(首領)으로 하는 집단지도체제가 등장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남북관계나 핵문제와 관련해서도 그랜드 바겐 같은 획기적인 돌파구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북한이 기존 정책을 수정하여 어려운 문제를 타결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지도자의 결단력 있는 지도력이 필요하다. 김정일 사후 북한에서 그러한 리더십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1994년 김일성 사망 당시 한국과 세계는 북한정권의 급변 가능성에 기대를 많이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은 지도자의 사거, 대규모 기근, 국제적 고립을 극복하고 정권과 체제 유지에 성공하였다. 아마도 2010년대의 북한은 식량 부족과 경제 난항에도 불구하고 지도층의 내부단합과 중국의 지원으로 급변사태는 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외관계에 있어서 북한은 중국의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도 러시아와의 관계를 더욱 밀접하게 하고, 미국·일본과의 관계도 개선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외부로부터 자유의 바람을 계속 차단하면서도 경제적인 지원을 받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미움의 표적이 되는 독재자가 사거한 마당에 민중이 봉기하더라도 표적이 분산되는 효과가 있으므로 자유의 바람에 대한 두려움이 적어질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러한 북한의 유동적인 사태를 주시하면서, 북한이 개방을 두려워하지 않고 안정되게 평화와 발전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주변국, 특히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과 협의하고 협조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