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상] 아픔을 사랑으로 감싸다… 나영이 아버지, 알리 만나 꽃 주며 위로

조선일보
  • 정지섭 기자
  • 이철원
    입력 2011.12.19 03:05 | 수정 2011.12.19 06:31

    아버지와 같이 온 나영이, 부끄럼 많아 차에서 기다려
    나영이 아버지
    "그런 고통 있는 줄 몰랐네요 많이 힘들었죠… 울지마요, 네티즌들 진정했으면 좋겠다"
    편지 5장에 마음 담은 알리
    "나영이에 용기주려 했는데 미리 말씀 못드려 죄송해요… 언니가 정말 미안해" 눈물

    "제가 작사·작곡자인데 미리 말씀드리지 않은 것 죄송합니다. 힘든 일 겪어도 언니처럼 이겨낼 수 있다고 용기를 주고 싶었어요."(가수 알리)

    "앞으로 할 일이 많은 아가씨가 이렇게 힘 빼서 되겠어요? 울지 마요."(나영이 아버지)

    17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연예기획사 사무실. 자신의 또는 가족의 '성폭행 피해'라는, 어쩌면 인생의 가장 무겁고 감추고 싶은 짐을 진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한쪽은 검은 정장을 입은 여가수 알리(27). 다른 한쪽은 2008년 벌어진 조두순 성폭행 사건의 피해 어린이 나영이(가명)의 아버지.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모든 일은 14일 알리가 조두순 사건을 다룬 자작곡 '나영이'를 새 앨범에 담아 발표하면서 비롯됐다. 일부 네티즌은 '청춘을 버린 채 몸 팔아 영 팔아…' 등의 가사를 문제 삼으며 알리를 무차별 공격했고, 알리는 그날 밤 나영이에 대한 사과문을 낸 뒤 앨범을 전량 수거·폐기했다.

    그래도 일부 네티즌의 악플이 멈추질 않자 알리는 16일 아버지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3년 전 나도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백하며 거듭 용서를 구했다. 알리 측은 14일 문제가 발생하자마자 나영이 가족에게 "찾아가 사죄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고, 안산에 사는 나영이 아버지가 알리 측의 기자회견을 본 뒤 "내가 나영이와 함께 찾아가겠다"고 해 만남이 성사됐다.

    알리가 17일 나영이 아버지를 통해 나영이에게 준 사죄의 편지.

    이날 나영이 아버지는 알리가 눈물을 흘리며 사죄하자 갖고 온 백합과 안개꽃 다발을 내려놓고 거듭 알리를 달랬다. "나도 어제 기자회견한 내용을 들었어요. 그렇게 큰 고통이 있는 줄 몰랐네요.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을지 충분히 짐작돼요. 사전에 우리에게 알리지도 않고 노래를 만들었단 얘길 듣곤 화가 나 음반 판매 금지 가처분까지 생각했는데 노래를 폐기하겠다고 해서 마음이 좀 누그러졌어요. 그런데 그런 사정(성폭행)까지 있었다니, 내가 다독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나영이 아버지가 "참 많이 힘들었죠?" 하자 알리가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나영이와) 같은 해에 저도 당했어요. 그래서 (나영이) 기사가 나오면 스크랩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나영이 돕기 모금 기관에) 익명의 기부도 했어요.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아 더 적극적으로 돕고 싶었지만 그러면 주변에서 '혹시 너 뭐 있니' 할 것 같아서 공개적으로는 못 했죠."

    나영이 아버지는 알리에게 "힘들겠지만 위축되지 말고 당당하게 정면 돌파해라. 그게 이기는 길"이라고 했다. "우리 사회 풍토가 슬프지만 '목소리 안 내는 사람이 바보'라고들 생각하잖아요. (성폭행 피해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당당하게 낼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져야 해요." 그는 "이번 (나영이 노래) 일 때문에 네티즌이 많이 화가 난 것 같은데, 오해도 많이 풀린 만큼 진정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가수 알리(본명 조용진)가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홍지동 상명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린 알리의 정규 1집에 수록된 '나영이'곡 논란과 관련한 공식 기자회견장에서 2008년 성폭행당한 사실을 밝히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나영이 아버지가 1시간여 동안 얘기를 나눈 뒤 "바쁜 사람 시간 잡아먹으면 안 된다"며 일어나자 알리는 다이어리와 연필, 꽃 장식이 달린 머리띠가 든 종이 가방을 전달했다.

    알리는 나영이에게 사죄와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는 내용의 다섯 장의 편지도 초록 봉투에 담아 함께 전달했다. "내가 부족해 너에게 상처를 또 주게 돼 정말 미안해. (중략) 만약 괜찮다면 너의 얘기도 들려줘.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어."

    나영이 아버지가 집으로 출발하려는 차 안에는 나영이가 타고 있었다. 나영이 아버지는 "나영이가 차를 오래 타고 와 피곤했던 데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 밖에 있고 싶다고 했다"고 했다. 알리는 안이 잘 보이지 않는 창밖에서 "언니가 정말 미안해"라고 몇 번이고 말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