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멋쟁이 화가' 권옥연

조선일보
  • 김태익 논설위원
  • 김도원
    입력 2011.12.18 23:05

    전시회 오프닝이나 인사동 거리에서 아는 여성을 만나면 그는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상대방의 볼에 서양식 뽀뽀를 하며 포옹을 하곤 했다. 단골 식당에 들어설 땐 "장모님, 나 왔어"라며 장난을 걸었다. 흥겨운 자리에서 누군가 노래를 청하면 망설이지 않고 일어나 프로 뺨치는 노래실력을 보여줬다.

    ▶16일 타계한 권옥연 화백은 아호를 무의자(無衣子)라고 했다. 인간은 원래 벌거벗고 왔다가 벌거벗고 가는 것, 그러니 무엇인가에 얽매이지 않고 살겠다는 뜻이었다. 그는 몇십년 동안 한국의 대표적 화가로 꼽혔으면서도 늘 "나는 아직 멀었다"며 스스로를 낮췄다.

    ▶권 화백은 "박수근이 위대한 화가가 된 것은 가방끈이 짧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못한 것이 오히려 자기만의 예술을 지키는 힘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프랑스 유학 가서 하도 좋은 것 하도 많이 보는 바람에 거기 물들어버렸다"고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안다. 이브 클라인에게 청색(블루), 박수근에게 황토색이 있듯이 권옥연 그림에는 권옥연만이 낼 수 있는 '회색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고대의 토기나 전통기와의 은은한 빛깔을 닮은 그의 그림들은 전통과 서양이 어우러진 세련된 색채의 향연으로 사랑받았다.

    ▶함흥에 있던 권 화백의 집안은 추사 김정희도 며칠씩 묵고 갈 정도로 대대로 유복했다고 한다. 그가 서예나 골동품에 뛰어난 안목을 자랑했던 데는 이런 집안에서 자란 덕이 클 것이다. 권 화백은 1962년부터 남양주군 금곡에 철거 위기에 놓인 전국의 이름난 고택(古宅)들을 하나 둘 옮겨와 복원했다. 그는 각종 전시·공연의 무대로 활용되던 이곳을 지난 6월 '무의자 문화재단'이란 이름으로 사회에 내놓았다.

    ▶권 화백은 1951년 결혼한 무대미술가 이병복씨와 국내 유일의 '예술원 회원 부부'로 유명했다. 두 사람은 서울 장충동 한 건물 아래 위층에 작업실을 갖고 있지만 상대방 공간을 찾는 일이 몇 년에 한 번 될까 할 만큼 서로의 세계를 지켜줬다. 이씨는 "나는 다섯살 아이하고 살아왔다"고 했다. 권 화백이 "화가는 정신연령이 다섯살 넘으면 그림 못 그린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살아온 탓이다. 멋과 풍류를 알고 작품으로도 큰 성취를 이룬 예술가가 하나 둘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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