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하나고등학교를 마지막으로 민족사관고등학교, 용인외국어고등학교 등 전국 단위 주요 자율형 사립고의 합격자 발표가 마무리됐다. 특히 올해는 학교별로 교과 성적 외에 다양한 분야의 경력을 갖춘 이색 입학생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대학생 수준의 독서 활동, 마상 무예, 바이올린 등 자신만의 특기를 살려 입학에 성공한 신입생들을 만났다.
학원 대신 도서관을 찾았다-박경호군
명지중학교 3학년 박경호군은 대학생 수준의 독서량으로 하나고 입시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초·중 9년 동안 박군이 읽은 책은 700여권. 초등 저학년 때는 주로 동화책 위주로 읽고 고학년이 되면서 관심 분야인 경제학 쪽으로 독서 범위를 넓혀 갔다. 중2 때부터는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뒤르켐의 자살론 등 대학생 수준의 고전을 읽기 시작했다.
“제 수준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책도 많았어요. 하지만 이해하지 못한 내용은 몇 개월 뒤에 다시 읽어보고 사전과 참고도서를 같이 읽는 방법으로 꾸준히 읽었죠. 순수이성비판은 지금까지 6번 읽었는데 이제야 조금씩 이해가 돼요. 독서를 통해 쌓은 풍부한 배경지식이 교과목 공부할 때도 큰 도움이 됐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해온 신문, 사설 읽기는 다양한 시사 상식을 섭렵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어머니 강화선씨는 “저학년 때는 제목이나 사진 위주로 신문을 접하게 하고 고학년이 되면서 관심 분야의 기사를 스크랩해서 모아줬다. 지금은 매일 아침 일어나 처음 하는 일이 신문을 보는 것일 정도로 신문 마니아가 됐다”고 말했다.
2, 3학년 전학기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박군은 학원의 도움은 최소화하고 학교 수업과 자기주도학습으로 성적을 유지했다. 학원은 방학 때 부족한 과목을 보충하는 정도로만 활용했다.
“혼자 문제를 풀다가 어려운 부분이 있거나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이 있을 때만 학원을 찾았어요. 학원에 다닐 때도 학원 수업에 의존하지 않으려고 제가 묻고 싶은 것만 묻고 집에 돌아왔는데 이 때문에 학원에서 잘린 적도 있어요.”
박군은 “내신 시험은 모두 수업시간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학교에 있는 시간에는 철저하게 집중한다. 쉬는 시간 10분은 전 수업 복습 5분, 다음 수업 예습 5분으로 활용하고 선생님의 농담 한마디까지도 모두 노트에 적는다. 노트는 1차로 연습장에 기록하고 2차로 노트에 정리한 뒤, 마지막으로 교과서 해당 부분에 옮겨 적어 3번 반복 학습을 한다. 모르는 것은 1주일치를 정리한 뒤 해당 과목 선생님을 찾아가 집요할 정도로 질문을 쏟아내 교사들이 마주치기 부담스러워한다는 후문이다.
빈곤층의 경제적 자립기반 마련을 위한 ‘무담보 소액 신용대출’과 복지를 결합한 사회적 기업가가 꿈인 박군은 “무계열, 무학년제도로 운영되는 하나고에서 인문학과 공학을 아우르는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상 무예 여전사-장수아양
민사고에 합격한 강원도 고성 동광중학교 3학년 장수아양은 한민족전통마상무예격구협회의 정식 국가대표다. 지난 2010년 9월에는 미국 오리건에서 열린 세계 국제 기사대회에 10개국 참가자 중 유일한 청소년 여자 선수로 참가하기도 했다.
토론토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아버지를 따라 네 살 때부터 초등학교 4학년까지 캐나다에서 거주한 장양은 부모와 함께 강원도 고성의 산골마을로 이사했다. 2년여간 세 식구가 직접 통나무집을 지어 생활하면서 수아양은 전교생 21명의 도학초등학교에 다녔다. 학교 공부 외에 다른 교육을 받아본 적은 없지만 마상 무예, 태권도, 특공무술 등으로 체력을 단련하고 좋아하는 책을 읽고 애니메이션을 보며 다양한 문화에 대해 관심을 키웠다.
"한국에 돌아온 첫해에 엄마는 대학 강사로 아빠는 연구원으로 일하시느라 밤 10시나 돼야 잠깐 얼굴을 볼 수 있었어요. 대화가 적어지고 서로 멀어지는 느낌이었죠. 가족회의를 통해 고성으로 이사하기로 결심했어요. 가족끼리 집을 만든 경험은 제게 큰 성취감을 갖게 했어요"
작은 시골학교 생활은 문화혜택, 체험활동 등 상대적으로 기회가 부족할 것 같지만, 오히려 수아에게는 큰 도움이 됐다. 다섯 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에서 아이 일곱명 중 맏언니로 동생들을 돌보면서 책임감을 가지게 됐고 선생님들과 가족처럼 지내면서 자연스레 면접 준비가 됐다.
"제게 선생님은 친근한 분들이에요. 면접 바이블 같은 책도 있던데 전 따로 준비한 게 없어요. 면접이 끝나고 우는 친구들도 있더라고요. 오히려 무슨 문제가 나올 것이다,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고민 할 필요 없이 제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한 것이 면접을 잘 본 비결인 것 같아요."
민사고 관계자는 "수아는 소위 특별한 스펙은 없지만 지금까지 삶 자체가 충분한 스토리가 된다는 점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바이올리니스트에서 내과 전문의로-강지수양
예원중학교 바이올린과 3학년 강지수양은 올해 용인외고 입학생 중 유일한 예능계 출신이다. 7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한 지수양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엄마와 함께 찾았던 연주회에서 관객들이 음악을 들으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고 바이올리니스트의 꿈을 키웠다"고 말했다. 예중에 진학하기에는 늦은 감이 있었지만, 하루 10시간 이상 연습에 몰두한 결과 당당히 합격했다. 하지만 중학교 1학년 기말고사를 앞두고 갑작스레 병마가 찾아왔다.
"못 알아볼 정도로 얼굴과 온몸이 붓고 열이 오르는 증상이 나타났어요. 서울대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해봤지만, 발병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하더군요. 넉 달 동안 병으로 고생하면서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건강을 지켜주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달았죠."
퇴원 후 지수양은 "의사가 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하지만 예중에 입학시키기 위해 몇년간 공들인 부모님을 납득시키기는 쉽지 않았다.
"말로만 고집을 피우는 것은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성과로 제 의지를 보여 드리자고 결심을 했죠."
지수양은 곧바로 학원에 등록해 수학과 물리 올림피아드 대회 준비를 했고, 영어는 독학으로 토플 점수를 115점까지 끌어올렸다. 낮에는 연주 연습을 하고 밤에는 새벽까지 잠 못 이루며 공부하는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목표가 확실한 만큼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3학년 때는 학생회장을 맡아 학교 활동에도 최선을 다했다. 딸의 의지를 확인한 부모님은 적극적으로 자율고 진학 준비를 도왔다.
"기술이나 의학적으로 뛰어난 의사가 아니라 환자들에게 다가가 함께할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예원학교와 용인외고에 입학하기 위해 노력했던 마음가짐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