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왕 마지막 가는길, 좌파 사이트도 "애도"

입력 2011.12.14 14:50 | 수정 2011.12.14 17:34

좌우로 갈라져 사안마다 첨예한 대립을 벌여온 우리 사회가, ‘철강왕’의 마지막 가는 길 앞에서 모처럼 한마음이 됐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13일 오후, 포털사이트 다음(DAUM)의 ‘아고라’와 국내 최대 커뮤니티 사이트들인 ‘클리앙’, ‘MLB파크’ 등에도 애도의 글이 잇달아 올라왔다. 이들 사이트는 광우병·천안함 음모론 등을 적극적으로 키우고 확산했던 국내 대표적인 좌파 성향 사이트들이지만, 이날만은 박 회장에 대한 애도 물결에 동참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아고라 토론방, 관련 게시물 19개 중 15개가 애도 글

과거 한미 FTA 등의 사안에서 매번 좌파 진영의 시각으로 글을 써온 아고라 필명 ‘율라뽐따이’는 이날 오후 6시쯤 박 명예회장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대한미국의 근대화에 한 획을 그었던 박태준, 철강왕 박태준, 정치만 안 했어도 영원히 이름을 날렸을 박태준…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었다.

다음 아고라 토론게시판에서 '박태준'으로 검색하자, 애도를 표시한 글들이 나타나고 있다.
평소 중도적인 시각의 글을 올려온 필명 ‘손경석’도 “물처럼 섞였던 고 박태준 회장”이라며 애도를 표했다.

이날 자정까지 아고라 토론방에는 박 명예회장의 별세를 다룬 글이 19건 올라왔으며, 이 중 고인을 비난하는 논조의 글은 4개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모두 애도를 표시한 글들이었다.

클리앙에서도 ‘masquerade’라는 아이디의 네티즌이 같은 날 오후 5시30분쯤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 별세하셨다는군요’라는 글을 올리자 8명의 네티즌이 답글을 달아 애도의 뜻을 적었고, 이어 올라온 ‘박태준 회장 별세’라는 제목의 글에도 네티즌들은 ‘영웅’ 등의 표현을 쓰며 박 명예회장의 별세를 안타까워했다. “또 하나의 산업신화가 끝을 맞이했다”, “좋은 분이셨다” 등의 글도 있었다.

좌파 성향 네티즌들은 박 명예회장의 포철 성공 신화와 함께, 1997년 이른바 ‘DJP 연합’을 통해 사상 첫 여야 간 정권교체에 기여한 점에 높은 점수를 줬다. 또 1987년 한겨레신문이 국민주 모금에 나섰을 때 “그런 신문도 필요할 것”이라며 자회사와 협력회사 5억원을 모집해 전달한 일화, 박정희 전 대통령의 3선개헌 지지 거부 사건 등도 자주 거론했다. 이런 글에선 “대한민국 건국 이래 보수진영에서 나온 최고의 합리주의자” 등의 표현도 나왔다.

우파 시각을 담은 게시물이 올라오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악성 비난글도 이날만은 찾기 어려웠고, 평소 극좌 성향을 보여온 네티즌들은 아예 관련 소식에 대한 언급을 피하는 모습이었다.

◇‘국가장’ 소식에 한때 격론… ‘사회장’ 결정되자 진정

그러나 이런 추모 일변도의 분위기는 다음날 아침 정부가 박 명예회장에 대한 ‘국가장(國家葬)’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을 계기로 한때 급변하기도 했다. 일부 네티즌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가 ‘국민장’으로 치러진 점에 비취 현 정부와 고인에 대한 비판에 나선 것.

클리앙에서는 한 네티즌이 “이분이 뛰어난 업적이 있는 것은 맞지만, 전임대통령에게 그렇게 딴지걸던 정부가 나서서 이러니 기분 나쁘네요”라는 글을 올리자 순식간에 3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며 격론이 벌어졌다. “보수를 꼭 (끌어) 안기 위한… 수첩공주(박근혜)의 눈치도 좀 작용한 듯”, “스티브 잡스가 국가장 하더냐” 등의 댓글이 등장했다. 전날 박 회장 별세 소식에 대한 댓글이 애도 내용 위주로 10개를 넘기지 못한 것과 대조를 이뤘다.

아고라 등에서도 “故 김대중 대통령, 故 노무현 대통령도 국민장으로 했는데 일개 기업총수 따위가 국가장이라니”라는 비아냥과 함께 “박정희 밑에서 같이 독재하던 사람”, “보수층의 박정희 향수를 자극하겠다는 꼼수” 등의 비판이 나왔다.

박태준 명예회장에 대한 국가장 검토 기사에 달린 악성 댓글들.
전날까지 거의 보이지 않던 좌편향 악플도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모습을 드러냈다. ‘이명개***’란 필명의 네티즌은 “막장으로 치러라 쓰레기 놈들아. 일본이 일제시대 우리나라를 빨아먹은 보상금으로 만들어진 포항제철 이놈들이 당시 피해자들을 위해 한 게 뭐가 있는데?”라고 주장했고, “(우리를) 일벌레 노예 민족으로 만든 놈, 불에 태워버려라”처럼 저주에 가까운 비난도 있었다.

하지만 14일 오전 11시쯤 장례 형태가 ‘사회장’으로 최종 결정되자 논란은 다시 사그라지고 있다. 좌파 성향 네티즌들도 대체로 “사회장 정도의 자격은 있는 인물”이란 반응을 보였기 때문. 이와 함께 묻지마식 비난도 자취를 감추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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