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난생처음 미국을 방문해 국무부의 북한인권대사를 면담하고 유엔고등판무관실 뉴욕대표부를 찾아 실무자를 면담했다. 1980년대 말~90년대 초에 홀로 내 식솔을 북한에서 데리고 나와야겠다고 발버둥치던 때와는 크게 달라진 현실에 현기증을 느낀다.
25년이라는 세월을 나는 지옥 아닌 지옥에서 살았다. 내 조국의 다른 한쪽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백일몽(白日夢)에 사로잡혀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을 죽음의 계곡으로 몰고 들어간 대가였다. 내 가족이 요덕이라는 실재하는 '지옥'에 잡혀 있다면, 나는 정신적인 '지옥'에서 시름하며 지내고 있다. 국제 사회와 한국 정부에 아내 신숙자와 두 딸 혜원이와 규원이를 구해달라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사반세기를 보냈다. 일부 국제 NGO의 협조가 있었지만 상대가 북한 당국이다 보니 이렇다 할 결과는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더 절망의 구렁으로 빠지고 사회와 격리된 인간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올해 초 대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북한 정치범수용소 전시회를 시작하면서 희망의 소리가 들려왔다. 내 딸들을 구해달라는 운동이 전시회와 함께 진행되었고, 아내의 고향인 통영에서 '통영의 딸을 구출하자'며 서명운동을 시작했다는 소식도 뒤를 이었다. 북한 인권 단체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러던 중 ICNK(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가 발족하면서 이 문제를 국제 사회에 호소할 수 있게 됐다. 독일 외교부의 인권담당관은 직접 북한을 방문하겠다고 말했고, 미 국무부와 유엔 고등판무관실도 내 가족을 구출하는 데 모든 기회와 방법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또한 우리의 뉴욕 방문을 언급하며, "유엔 차원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적극적으로 방법을 찾겠다"라고 직접 말했다. 국내에서는 십여 명의 청년들이 통영에서 임진각까지 680㎞나 되는 거리를 걸어서 올라오며 전 국민을 대상으로 '통영의 딸 구출'을 호소하고 있다.
이 모두 참으로 감사하고 송구한 일이다. 독일에서의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준 국제인권협회(IGFM), 미 국무부와 유엔대표부 면담을 도와준 ICNK 인사들, 그리고 지금도 서울로 걸어서 오고 있는 국토대장정 단원들, 그 외에도 수없이 떠오르는 고마운 이름들을 다 열거하지 못해 아쉽다.
이제 한국 사회의 젊은 북한 인권 투사들은 이 문제를 한국 사회를 넘어 국제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로 받아들이고 더 큰 북한 인권의 틀 속에서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들의 움직임이 내 삶에 새로운 빛을 주고 있다. 하지만 탈북자들이 그렇듯이 나 또한 북한 당국의 본성을 잘 아는 사람이다. 25년간 못 볼 꼴을 다 보고 있는 내 가족을 과연 북한 김정일 범죄집단이 되돌려줄 것인가를 생각하면 또다시 절망의 늪 속에서 헤매게 된다. 나는 요즘 하루에도 열두 번 넘게 절망과 희망을 오가며 어지럼증을 앓고 있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 청년들에게서 걸려오는 전화 소리에 또 희망의 음성과 빛을 보고 있다. 국토대장정단이 서울에 도착하는 10일, '세계인권의 날'에 청계광장에서 큰 행사를 하겠단다. 나는 이날 가슴 터지게 희망을 안고 그들 속으로 달려갈 것이다. 나 하나가 내 가족을 데려오겠다고 꾸던 꿈이 수백 수천 명의 국내외 젊은 북한 인권 운동가들이 꾸는 꿈으로 되었고, 이제는 그 꿈이 현실이 되는 일만 남아 있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