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은 거룩한 직업… 살려서, 살아서 돌아오라"

조선일보
  • 어수웅 기자
    입력 2011.12.06 03:02

    [순직 소방관 평택 빈소에 조용히 다녀온 소설가 김훈]
    장래희망 소방수였던 소년… 커서 신문기자·소설가 됐지만
    소방관 향한 존경·애정 깊어 남몰래 조의금 전달하고 와
    "남의 재난에 몸던지는 사람에 사회의 격려·응원 너무 빈약"

    평택 화재진압 중 순직한 두 소방관 빈소에 소설가 김훈(63)씨가 4일 조용히 다녀갔다. 소문내지 않은 발걸음이었는데, 유족들이 넌지시 귀띔했다. 5일 전화통화에서 작가는 "소식을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파 조위금 몇 푼 전달했을 뿐"이라며 "소문낼 일이 못된다"고 말을 잘랐다. 면허증이 없는 작가는 글 쓰는 후배에게 운전 빚을 졌다고 했다. 작가의 집은 경기도 일산. 빈소는 경기도 평택시 송탄 중앙장례식장. 자동차로 대략 두 시간 거리다. 작가는 소방관을 "거룩한 사람들"이라고 호명하면서, "남의 재난에 몸을 던져 뛰어드는 직업은 거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의 소방관에 대한 존경과 애정은 뿌리와 연원이 깊다. 첫 번째는 유년 시절의 기억. 6·25전쟁 이후 잿더미가 된 가난한 서울에서 홀로 높게 솟아있던 소방서 망루와 그 망루가 줬던 안도감에 대해 쓴 글이 있다. 매일 밤 불이 나고 매일 새벽마다 사이렌이 울리면, '소년 김훈'은 울면서 소방관 아저씨들이 무사히 살아서 돌아오기를 빌었다는 것. 그러면 무서운 밤이 덜 무서워졌고, 세상은 문득 따뜻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장래희망을 적는 신상조사서에 '소방수'라고 적었던 소년은 나중에 커서 신문 기자가 됐다.

    평택 가구 전시장 화재를 진압하다 숨진 두 소방관 빈소를 소설가 김훈씨가 4일 조문했다. 그는 “남의 재난에 몸을 던져 뛰어드는 직업은 거룩할 수밖에 없다”면서 “소방관이야말로 진정 거룩한 사람들”이라고 추모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사회부 사건기자 시절인 1970년대에는 수많은 화재현장을 취재했다고 했다. 스프링클러도 없고, 고가사다리차라고 해야 겨우 6층 정도나 접근 가능했던 시절. 게다가 내다버린 연탄재에 불이 남아 있어서 겨울이면 서울 시내에서 하룻밤 새 대여섯 번씩 불이 나던 시절이었다. 작가는 그때마다 호스를 든 선봉 관창수 옆에서 취재를 했고, "죽으려고 이러느냐"며 혼이 났고, 그러다가 소방관 친구들을 사귀었다. 작가는 "많은 소방관들이 불구덩이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면서 "갓난아이를 둔 신혼의 가장도 있었고, 불구덩이 속에서 질식한 사람들을 찾아내 둘러업고 나오다가 무너지는 건물에 깔린 대원도 있었고, 어둠 속에서 갑자기 프로판 가스통이 터져서 산화한 대원들도 있었다"고 했다.

    이번에 평택에서 숨진 소방관들도 마찬가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자식을 엄마 뱃속에 둔 채 먼저 떠난 한상윤 소방장, 다른 대원들을 모두 대피시키고 마지막으로 나오려다 참사를 당한 이재만 소방위가 그들이다. 그는 "참으로 기가 막히더라. 초등생 아들 하나가 나를 쳐다보는데, 할 말이 없고, 가슴이 미어졌다"고 했다. 작가는 "인간에게 다른 인간이 다가오지 않으면 고립된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작가로 정체성이 바뀐 뒤에도 그의 소방관에 대한 존경과 애정은 계속 이어졌다. 그가 1995년에 쓴 첫 장편소설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의 주인공도 소방관이며, 3년 전에는 경기도 119소방대원들 103명의 현장체험기를 모은 소방관 문집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출판도시문화재단 출간)의 편집도 맡았다. 작가는 '인간에게 다가오는 인기척'이란 제목의 이책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재난에 처한 인간을 향하여, 그 재난의 한복판으로 달려드는 건장한 젊은이들이 저렇게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아름다움이 아직도 남아있고, 정부와 국가의 기능이 정확하고도 아름답게 작동되고 있다는 신뢰감을 느끼게 한다. 인간만이 인간을 구할 수 있고, 인간만이 인간에게 다가갈 수 있으며, 인간만이 인간을 위로할 수 있다는 그 단순명료한 진실을 나는 질주하는 소방차를 보면서 확인한다."

    소문낼 일이 아니라며 말을 아끼던 그가 이것만은 얘기해 달라며 덧붙인 사례와 주문이 있다. 2주일 전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가 났고,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순간이었는데 119 소방대가 득달같이 달려와 해결해 줬다는 것.

    하지만 소방관의 처우는 안타까운 수준. 이 소방위의 월급은 200만원 남짓에 위험수당 5만원, 화재진압수당 8만원. 한 소방장은 기본급 180만원 정도에 수당은 같다. 남의 재난에 몸을 던져 뛰어들지만, 그 수당은 13만원이 전부다.

    그는 "소방대원들은 이 사회의 기초를 지키고 버티어 주는 안전판이고, 인간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실천하는 보살들"이라며 "우리 사회가 소방대원들 사명의 고귀함을 인식하고 그들을 응원하고 격려해 줘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회가 주는 응원과 격려의 수준이 너무 빈약하다"고 일갈했다.

    달려가는 소방차의 대열을 향해 전하는 작가 김훈의 기도는 한결같다. "살려서 돌아오라, 그리고 살아서 돌아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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