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은 사적(私的) 공간인가, 공적 영역인가. 페이스북에서 법관은 정치적 성향을 드러낼 수 있는가, 없는가.
"뼛속까지 친미(親美)인 대통령과 통상 관료들이 서민과 나라 살림을 팔아먹은 2011년 11월 22일, 난 이날을 잊지 않겠다."
인천지법 최은배(45·사법연수원 22기) 행정1부장판사가 지난 2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강행 처리 직후 페이스북에 올렸던 이 글이 사법부 안팎에서 논란에 휩싸였다. 본지는 최 부장판사를 그동안 'A 부장판사'로 익명 보도했으나, 그가 일부 언론과 실명 인터뷰한 것을 계기로 실명 보도하기로 했다.
◇페이스북은 사적 공간? 공적 공간?
최 부장판사 본인을 비롯해 그가 회장인 우리법연구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이른바 '진보 진영'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소수 친구나 회원만 공유하는 사적 공간"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SNS 사용자가 법관이든 그 누구든 그가 어떤 주장을 하든 사생활 영역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 관계자는 "SNS가 놀라운 전파성과 공개성이 있기 때문에 사적인 공간만으로 볼 수 없고, 이번 사건은 오픈될 경우 SNS가 '1인 방송국'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양승태 대법원장 지시로 법관들의 SNS 사용에 대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중이었다.
한상기(51) 소셜컴퓨팅연구소장은 "외부 강연 때마다 '모든 인터넷은 공개 가능성 때문에 사적인 공간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해 왔다"면서 "하지만 일부 사용자는 사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고, 어디까지를 사적 공간(또는 공적 공간)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라 팔아먹은' 발언 적절했나
또 다른 쟁점은 '뼛속까지 친미' '나라 살림을 팔아먹은'이라는 표현이 적절했는지 여부다. 지지자들은 "FTA 날치기 통과에 대한 시의적절한 표현"이라며 최 부장을 옹호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배석판사(39)는 "최 부장의 표현 자체가 거칠어서 그렇지 법관들도 다양한 사회 이슈에 대해 자기의 정치적 의견도 표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만약 앞으로 FTA와 관련한 형사·민사·행정 사건이 최 부장에게 배당돼 한쪽 당사자나 검찰이 좌편향 이념을 가진 판사에게 재판받을 수 없다며 '기피 신청'을 내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매우 부적절한 언행"이라고 말했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29일(화) 최 부장판사 발언의 적절성 여부와 법관들의 SNS 사용 가이드라인 필요성 여부를 함께 검토할 예정이다.
◇미국은 SNS 금지 또는 자제 권고
대법원은 '공정한 재판을 통한 권리 구제'라는 사법부의 핵심 가치를 위해 불공정한 재판을 할 우려가 있는 행위는 자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판이 실제로 공정해야할 뿐만 아니라 외부에도 그렇게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도 법관들의 SNS 사용을 금지하거나 자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플로리다주 대법원의 사법윤리권고위원회의는 "법관은 법정에 나타날 수 있는 변호사나 당사자를 SNS에 '친구'로 등록하거나, 그 변호사나 당사자가 법관을 자기들 친구로 등록하는 것을 허용해선 안 된다"고 명시했다. 그 이유는 "SNS의 '친구'들이 실제로 법관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지 없는지에 관계없이 그들이 법관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캔터키주와 뉴욕주, 오하이오주도 "SNS에서 교류하는 것은 사적인 교류보다 훨씬 더 공개적이므로 법관들은 스스로 매우 신중하게 이용해야 한다"는 권고안(案)을 내놓았다.
현직 법관 400여명으로 구성된 사법정보화연구회가 최근 법관 109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법관의 SNS 사용에 대한 통일적인 기준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절반이 넘는 57명이 '매우 그렇다'(14명)거나 '그렇다'(43명)고 대답했다. '필요없다'는 응답은 21명에 불과했고, 31명은 '보통이다'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