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짭새(경찰을 비하하는 표현)××가 겁도 없이." "내가 오늘 너 꼭 죽인다."
사복 경찰 10여명이 급히 박건찬(45) 종로경찰서장을 에워쌌지만 소용없었다. "매국노", "겁쟁이"라는 고함 소리가 터지면서 박 서장의 머리와 어깨에 주먹이 날아들었다. 박 서장의 경찰모와 안경이 날아가고, 근무복 점퍼 왼쪽 어깨의 계급장이 뜯겨나갔다. 폭행 상황은 10여분간 이어졌다. 시위대 일부가 "때리지 마"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폭행에 가담한 수십명의 시위대는 욕설과 폭행을 멈추지 않았다.
◇물대포 쏘지 않고 해산 요청한 경찰서장에게 주먹으로 대답한 시위대
박 서장은 지난 26일 밤 9시 30분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불법 시위를 하던 2200여명의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현장에 나갔다. 그는 폴리스라인(질서유지선)에서 50m 떨어진 이순신 장군 동상 근처에서 연설 중이던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등 야당 의원들을 직접 만나려다 이 같은 집단 폭행을 당했다. 그러나 이날 집단 폭행에 대해 인터넷과 트위터 등 SNS(인터넷 인맥 서비스)에는 거꾸로 박 서장을 비난하는 글이 올려졌다. "종로경찰서장이 근무복에 정모까지 착용하고 시위대 사이로 온 것은 일부러 폭행을 유도한 것이다", "자작극이다" 등의 글이 유포됐다. 이날 집회에서 박 서장 등 38명의 경찰관이 시위대에 맞아 다쳤다.
경찰은 27일 오후 박 서장을 폭행한 혐의로 김모(54)씨를 체포해 조사 중이다. 김씨는 지난 8월 서울 중구 한국자유총연맹 광장에서 열린 이승만 대통령 동상 제막식에 참석한 캐슬린 스티븐슨 당시 주한 미국대사 차량에 물병을 던져 경찰 조사를 받았었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는 친일인명사전 등을 만든 좌파 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의 경기 남부지부 고문을 맡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불법 시위대 2200명에 무너진 경찰 8000명
민주노총·민주노동당·참여연대 등 좌파 세력이 주축이 된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이날 오후 8시부터 오후 10시 30분까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미 FTA 비준 무효화'라는 이름의 불법 집회를 열었다. 광화문광장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린 것은 2009년 8월 개장 이후 처음이다.
이날 오후 6시부터 세종문화회관 근처에서 사전 신고를 하지 않은 불법 집회를 하던 시위대 2200여명(경찰 추산·주최측 주장 2만명)은 "청와대로 진격하자", "한나라당 해체하자" 등 반(反)정부 구호를 외치다 광화문광장으로 난입했다.
경찰은 이날 전·의경 8000여명과 차벽을 동원해 광화문광장 일대를 봉쇄했지만 시위대를 막지 못했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의 장녀 서울대 사회과학대 학생회장 수진(21)씨 등 19명을 연행한 것이 전부다.
경찰은 오후 9시쯤 살수차 5대를 시위 현장에 배치했지만 경고 방송만 반복했다. 우비를 차려입은 몇몇 시위대는 "물대포 쏜다고 말만 하지 말고 빨리 쏘라"고 조롱했다. 경찰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물대포를 쏘지 말라고 하고, 시위대에 손이라도 대면 난리가 나니 경찰은 어깨만으로 손발 다 쓰는 시위대를 막는 셈"이라며 "8000명 아니라 8만명이 동원돼도 이런 상태에서는 시위대를 못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3년 전 광우병 구호까지 꺼내 시민 호응 이끌어내려 시도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극단적인 구호까지 등장했다. 시위대는 "매국노 이명박 정권 타도하자"는 구호를 외쳤다.
광화문광장에서 명동 근처로 가두행진을 하던 시위대 중 일부는 "한·미 FTA가 발효되면 광우병 소가 다시 온다"는 구호를 외쳤다. 시민들은 별다른 호응을 보이지 않았다. 시위대 옆을 지나던 김모(38)씨는 "없는 말을 만들어내서 시민들을 선동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8시부터 2시간 동안 광화문광장 인근의 왕복 12차선 도로가 전면 통제돼 극심한 교통 혼잡이 빚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