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39] 아스파라거스 다발

조선일보
  • 우정아 서양미술사학자
    입력 2011.11.22 23:02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1832~ 1883)는 1880년, 정물화 '아스파라거스 다발'〈사진〉을 완성하여 절친한 컬렉터 샤를 에프루시에게 팔았다. 원래 가격은 800프랑이었지만, 그림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에프루시는 200프랑을 더 얹어 화가에게 보냈다. 매너 좋기로 소문난 마네는 서둘러 아스파라거스 한 줄기가 선반에 떨어져 있는 작은 그림을 그려 에프루시에게 보내며 메시지를 동봉했다. "먼저 보낸 다발에서 한 줄기가 빠져 있었지 뭔가."

    현재 작은 아스파라거스 그림은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에, '아스파라거스 다발'은 독일 쾰른의 발라프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1967년 이 작품을 미술관에 기증한 사람은 미술관 이사회 회장이자 도이치은행 총재였던 헤르만 압스였다. 전후(戰後) 독일의 위대한 은행가로 존경받았던 압스는 사실 히틀러의 나치 정권하에서도 고위 경제 관료로 활약하며 유대인의 재산 몰수에 가담했던 인물이었다.

    압스의 손에 들어가기 전, '아스파라거스 다발'은 유대인 화가 막스 리베르만의 소유였다. 독일 미술 아카데미 원장이었던 그는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던 1933년 유대인의 작품 활동이 전면 금지되자 원장직에서 사임하고 그 2년 후에 사망했다. 그의 부인은 1943년 게슈타포에 의해 유대인 수용소로 연행되기 직전에 자살했다.

    1974년 독일 작가 한스 하케는 발라프 미술관에서 과거 '아스파라거스 다발'을 소장했던 모든 컬렉터의 이력을 자세하게 소개하는 설치 작업을 공개하려고 했지만, 감춰졌던 압스의 나치 전력이 드러날 것을 우려했던 미술관은 이 작품을 전시회에서 제외해버렸다. 유쾌한 우정이 어려 있는 '아스파라거스 다발'이 비극적인 역사의 증인이 될 줄, 마네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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