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이 벌금을 내지않아 지명수배된 사람과 함께 술을 마시는 등 수차례 만나고도 그를 검거하지 않았다면 직무유기죄로 처벌될까. 하급심은 무죄로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9일 수사 때 잘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향응과 금품을 제공받고, 벌금미납자를 방관한 혐의(부정처사후수뢰, 직무유기) 등으로 기소된 경찰관 황모(47)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형사소송법상 재판의 집행은 검사가 하지만, 사법경찰관리도 검사의 지휘를 받아 벌금미납자를 노역장에 유치하기 위해 (검사가 발부한) 형집행장을 집행할 권한이 있다"며 "벌금미납자에 대한 검거도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라고 밝혔다.
이어 "(황씨가 누차 만나고도 검거하지 않은) 벌금미납자에 대한 형집행장이 발부됐는지 살펴보지도 않고, 경찰관에게 벌금미납자를 검거할 권한이 있다는 법률적 근거가 없다며 직무유기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은 위법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다만 황씨가 마약사범들의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향응과 금품을 받은 혐의에 대해서는, 공여자들의 진술이 엇갈리고 이들이 감형 등을 목적으로 거짓으로 제보했을 공산도 있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이 정당하다고 봤다.
마약수사대에서 근무했던 황씨는 2005년 4월 마약사범 우모씨 등과 만났다. 마약 관련 정보를 제공해 달라고 부탁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우씨 등은 되레 잘 봐달라며 술을 샀고, 이후 황씨는 수백만원대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이에 1심은 혐의 중 일부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220만원을 선고했다. 이후 진행된 2심 재판에서 검찰은 황씨가 벌금을 미납해 지명수배된 우씨를 세차례나 만나고도 검거하지 않았다며 직무유기 혐의를 추가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1심이 유죄로 판단한 부분도 무죄로 보는 한편, 직무유기 혐의에 대해서도 "경찰관은 범죄수사와 관련해 검사의 지휘를 받을 뿐, 벌금미납자를 검거해 온 관행과 달리 법적으로는 그런 권한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