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쓴 민주화 시위에 이어 국내의 '10·26 재·보선'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과시한 것이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였다. SNS만 있으면 앞으로 모든 독재자는 사라지게 될까. 이제 SNS로 연결된 대중은 한나라당·민주당 같은 기존 정당을 배제하고 '집권세력'이 될 수 있을까. 현장은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는 데 반해, 학자나 전문가의 진단은 아직 항공기 속도 수준인 것이 인터넷 문화의 속성. 국내엔 아직 출간되지 않았지만 올 초 미국에서 출간된 'The Net Delusion(인터넷이라는 망상)'이 비교적 흐름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어 미리 소개한다. 지난 7~8월 국내 언론학자들이 펴낸 'SNS 혁명의 신화와 실제' '소셜 미디어와 사회 변동'도 함께 참고로 살펴보자. /편집자

The Net Delusion (인터넷이라는 망상)
예브게니 모로조프 지음 | Public Affairs|432쪽|27.95달러


2009년 6월 이란 대선 부정에 이은 시위 사태 때 서구 언론은 트위터의 힘에 주목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위터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선언했고, 뉴욕타임스는 "깡패는 총알을, 시위대는 트윗을 쏜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착시 현상'이었다. 미 국무부는 "새로운 정보통신기술 덕에 이란 청년들이 국가권력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들의 생각을 말할 수 있게 됐다"고 했지만, 그 기술 덕분에 자유롭게 문자를 주고받던 많은 젊은이들이 죽거나 감옥에 갇혔다. 이란 정부는 시위 참가자들을 가려내는 데 웹에서 찾아낸 사진과 동영상들을 이용했다. 결국 이란 정부는 반대파를 쓸어내고 살아남았다.

"트위터와 인터넷이 이란에 혁명을 일으키고 아마디네자드 대통령과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릴 거라는 건 서방의 희망사항이자 일종의 '판타지'였다."

구(舊)소련 벨라루스 태생으로 인터넷 전문가인 저자 모로조프는 애초엔 무제한적이며 검열받지 않는 정보의 흐름이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고 독재를 흔들 거라는 '구글 독트린'의 신봉자였다. 하지만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 모국에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억압하는 데 악용되는 모습을 속절없이 지켜보며 생각을 바꿨다.

저자는 억압적 사회에서 인터넷이 정치적 변화를 추동하는 힘이 될 거라는 순진한 생각을 '디지털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명명한다. 그는 "인생이 권태로운 호사가들의 아침식사 약속 수단이었던 트위터가 무슨 정치 혁명의 엔진 대접을 받게 됐다. 기술의 마법에 일방통행식 찬사를 보낸 탓"이라고 꼬집는다.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도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면 변화가 일어날 거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신발 사듯 그들을 해방시킬 수 있다면 왜 우리가 군대를 보내야 하는가"라고 반문한다.

모로조프는 인터넷 등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원래부터 친(親)민주주의적이라는 생각, '사이버 유토피아주의'적 시각을 강하게 반박한다. 이런 시각 때문에 서방의 정책 결정자들은 "자발적인 지적 장애"에 걸려 버리고, 민주주의 확산은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사실 권위주의 정권은 인터넷뿐 아니라 TV 등 모든 종류의 미디어를 통제하며 자기 입맛에 맞게 이용할 수 있다. 구동독 지역 여론조사에 따르면, TV로 미국 드라마를 볼 수 있게 된 동독인들은 정치에 대한 흥미와 체제에 대한 반감을 잃고 고분고분해졌다. 한 동독 반체제 인사는 "모든 사람이 저녁 8시면 TV를 켜고 동독을 떠나 서방으로 이주한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마찬가지다. 네트워크를 통제하는 권위주의 정부는 과거의 어떤 사찰 수단보다 더 효과적으로 반체제 인사들을 감시할 수 있게 됐다. 중국은 대규모 친정부 블로거 군단과 중국판 트위터를 활용해 민족주의·애국주의를 퍼뜨린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서방의 정치평론가에게 "안녕하세요, 사실은 나는 독재에 반대한답니다"라고 트위터 메시지를 보낸다. 공영매체가 신뢰를 잃은 체제하에 사는 사람들은 SNS를 통해 확산되는 친정부 프로파간다를 상대적으로 더 신뢰한다.

전신, 항공기, 라디오, TV가 나올 때도 그랬다. 그들이 모두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는 데 도움될 것이라는 유토피아적 꿈을 낳았지만 결국 신기루로 판명 났다.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미얀마의 폭압 정치나 굶어 죽는 북한 사람들의 모습보다 포르노나 귀여운 고양이 비디오 따위를 더 보고 싶어 한다. 인터넷은 분노한 정치운동가가 아니라 낄낄대며 소파에 뒹구는 게으름뱅이(couch potato)를 양산한다. 저자는 웹사이트의 고객 정보 수집에 대해서도 "맞춤형 검열(customization of censorship)"이라고 냉소한다.

저자는 '사이버 유토피아주의' 대신 '사이버 현실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인터넷은 중립적"이라느니 "민주주의를 확산시킬 것"이라고 찬사를 늘어놓기 전에, 그 기술이 사회·정치적으로 확산되는 맥락부터 살펴보란 것이다.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페이스북, 트위터, 웹이 새로운 민주주의 변환의 물결을 격발할 것이라 믿었다면 이 책을 읽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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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혁명의 신화와 실제
김은미·이동후·임영호·정일권 지음 | 나남|317쪽|2만원

●소셜 미디어와 사회 변동
설진아 지음|커뮤니케이션북스|270쪽|2만5000원

한국 스마트폰 사용자는 2000만명. 아직은 2030세대의 전유물로 인식되고 있지만, 60대 이상의 사용도 점점 늘고 있다. 'SNS 혁명의 신화와 실제'(이하 SNS) '소셜 미디어와 사회 변동'(이하 소셜)은 한국에서의 SNS 확산 과정, 한국에서의 역할, 여파를 주목한 책이다. 글쓴이들은 모두 언론학자들, 교양용으로 읽기에는 뻑뻑하다.

◇명(明)

소셜 미디어 확산으로 대중은 발언할 권리를 얻게 됐다. "커뮤니케이션 구조의 평평화 효과(flattening effect)"(소셜·231쪽)다. 권리를 갖고 있으면 행사하게 된다. "나를 감시하는 빅브라더(big brother)가 문제가 아니라 주변에 퍼져 있는 수많은 스몰브라더(small brother)들이 언제든지 정치인의 감시자나 고발자로 변신할 수 있다"(SNS·201쪽) 세상을, 사람을 다 바꾸는 잠재력을 가졌다. 그 힘이 어디까지 미칠지는 누구도 쉽게 진단하지 못한다.

◇암(暗)

그렇지만 소셜 미디어는 어디로 튈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두 책은 소셜 미디어가 외려 불평등을 심화한다고 지적한다. "기술 발전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고령층, 저소득층 등의 정보 빈곤층들이 사회적으로 소외될 가능성도 증대할 수 있다."(소셜·237쪽), "소셜 미디어에서 친구(혹은 팔로어)의 수는 단순히 교류와 소통의 활성화를 의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사람이 보유한 사회자본의 규모를 과시하는 지표 구실도 한다."(SNS·298쪽) 즉 평등미디어가 '디지털 무산자'와 '유산자'를 가르는 신분지표가 되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역설은 '소수의 장악'이라는 우려를 낳는다. 과거의 권력·자원 양극화와 비슷한 상황이 소셜 미디어 세계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말 없는 다수는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소수에게 이용당하기만 하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어느 날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SNS·255쪽)

메시지의 맥락은 언제든지 과장·왜곡 될 수도 있다. "같은 메시지라도 어떤 메시지 옆에 있는지에 따라 다르게 읽히기도, 해석되기도 한다. 예컨대 북한의 세습에 대해 평하는 메시지 옆에 재벌의 세습에 관한 메시지가 있는지 아니면 북한의 인권에 대한 메시지가 있는지에 따라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SNS·103쪽)

정치·사회적으론 어떤 영향?

'SNS 혁명…'은 "훨씬 폭넓은 의제가 훨씬 다양한 시각에서 다뤄지도록 하는 데 소셜 미디어가 기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SNS의 효용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과거 인터넷이 확산될 때 '숙의 민주주의 도래'가 성급히 예측된 예를 들며 "정치적 잠재력은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다"고 책을 끝맺는다. 반면 '소셜 미디어…'는 긍정적 효과에 더 주목한다. "사람들이 공개된 정보를 많이 살펴보고 다양한 의견을 공유할수록 정치적 견제와 사회적 균형이 보다 잘 이뤄지고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