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의 씨네 칵테일] ‘씨민과 나데르 ’ 속 ‘이기심’이 파탄 빚는 삶의 아이러니

입력 2011.10.27 11:42 | 수정 2011.10.27 11:43

아내와 별거하게 된 남자,치매 부친 돌볼 여성 간병인 불렀다가 뜻밖 사건으로 살인죄 피소
각자의 이기심이 얽히며 모두가 불행해지는 삶의 풍경 리얼한 묘사…이란 영화의 놀라운 성취

이민에 대한 생각의 차이 때문에 다투는 씨민과 나데르 부부가 법원에서 결혼생활을 지속할수 없는 이유를 말하고 있다./출처=영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의 한 장면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 작품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Nader And Simin, A Separation)를 보며 진화(進化)를 계속하는 이란 영화에 또 한번 놀랐습니다. 단순 간결하고 정적(靜的)인 아름다움 가득했던 10여년 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와는 대조적으로 ‘씨민 …’은 사람들끼리의 비극적 다툼을 팽팽한 긴장감 속에 그려내고 있습니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과 남녀 주연배우상을 휩쓴 작품답습니다.
영화는 우리 삶의 풍경을 소름끼치도록 현실감있게 보여줍니다. 가정주부 씨민은 남편 나데르와 다툰 끝에 별거를 시작합니다. 그녀는 ‘이란 같은 나라’를 떠나 이민 가서 딸 아이도 좀 더 잘 키우고 싶은데 남편은 치매에 걸린 부친 곁을 지키겠다는 겁니다. 견해가 다르다는 것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끼리 거리를 두는 비극이 시작됩니다.

‘별거’는 이 부부가 겪게 되는 비극적 사건의 출발입니다. 주부 씨민이 집을 떠나자 당장 치매 노인을 돌볼 사람이 필요해진 남편 나데르가 ‘라지에’라는 젊은 아줌마를 간병인으로 고용했는데, 일이 꼬입니다. 어느 날 그녀가 노인의 팔을 침대에 묶고 집을 비웠다가 노인이 침대에서 굴러 떨어져 위험에 처한 것입니다. 귀가했다가 바닥에 쓰러진 아버지를 보고 분노한 나데르는 “당장 그만두라”며 간병인 여성을 내쫓다시피 집 밖으로 강제로 밀어냈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간병인 라지에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더 놀라운 건 임신 5개월쯤 된 아이를 유산했다는 겁니다.

나데르가 자신과 다퉜던 간병인 여성이 아이를 유산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자 간병인의 남편이 험악하게 달려들어 병원에 소란이 일어난 장면./출처=영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의 한 장면
병원을 찾은 나데르에게 라지에의 남편은 “당신이 우리 아이를 죽였다”고 펄펄뛰며 고소해 나데르는 살인죄로 법정에 섭니다. 화난 나데르도 간병인 아줌마를 부친 폭행으로 맞고소하고 여러 관련자들이 법정에서 다툼을 시작합니다. 가뜩이나 나빠지고 있던 씨민과 나데르 부부의 사이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습니다. 사건들이 눈덩이 처럼 커지면서 부부 간, 부모자식 간, 이웃 간 관계가 파탄에 빠지는 상황을 영화는 설득력있게 보여줍니다.

주목할 사실은 서로 충돌하는 극중 인물 중 특별히 나쁜 사람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감독이 어느 인물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지를 전혀 가늠할 수 없습니다. 속물도 악인도 아니고 합리성과 나름의 판단력을 갖췄고, 게다가 모두들 알라신을 두려워하는 신실(信實)한 사람들끼리 왜 이렇게 부딪쳐 황폐한 지경에 이르게 됐을까. 한 마디로 나의 이익을 앞세우는 ‘이기심’ 때문일 것입니다.

나데르가 치매 노인 간병을 소홀히 했다며 간병인 여성을 집에서 내쫓자 여성이 유리문 너머로 자신의 입장을 말하고 있다./‘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의 한 장면.
나를 먼저 챙기려는 그런 마음 때문에 인물들은 모든 사실을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합니다. 법정에선 아전인수(我田引水)식 왜곡과 거짓말도 불사합니다. 문제의 그 폭행에 관해서도 나데르는 “간병인을 내보내려고 집 밖으로 그냥 밀었을 뿐”이라고 축소지향적으로 말하는데 여자는 “남자가 나를 때리고 팽개쳐서 계단으로 굴러떨어졌다”고 약간 과장을 섞어 주장합니다. 진실은 두 사람 주장의 중간 어디쯤에 있는 듯해 보입니다.

사전에 나데르가 간병인 여성의 임신을 알았는지는 매우 중요한 부분인데, 이에 대해서도 나데르는 “전혀 몰랐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습니다. 사실은 아닙니다.
진실되지 못하기는 간병인 여성 라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유산이 남자의 폭행 때문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데르를 곤경에 몰아넣는데 급급합니다.

인간에 대한 이 영화의 예리한 시선은 인간의 이기심과 자기 합리화의 묘사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해 우기는 사람도 그 마음 한 켠에 ‘혹시 내가 틀린 것은 아닐까‘하는 회의가 꿈틀거리며, 거짓을 대놓고 말하는 사람도 결국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할 수 있음을 영화는 보여줍니다.

나데르 집에서 1년여를 일하며 쌓은 친분 때문에 나데르에게 유리한 증언을 했던 가정교사도 결국 증언을 번복하고 자신의 일자리를 포기합니다. 간병인 여성조차 자신에게 불리한 ’놀랍고도 중요한 진실‘을 막판에 가족에게 털어놓는 부분은 무척 큰 울림을 안깁니다.

극중 인물들은 좀더 자기 이익을 지켜보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결국 영화가 끝나갈 때쯤이면 모두다 비극적으로 상처를 받을 뿐입니다. 이런 아이러니가 세상 진실 중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영화는 이렇게 우리 사는 모습을 거울을 들여다보듯 비춰냅니다.

그 머나먼 땅의 이야기가 한국 관객에게까지 공감을 안기는 점에서 이란 영화의 세련된 솜씨와 안목을 실감합니다. 좋은 영화라는게 물량이 아니라 훌륭한 이야기와 좋은 연기에 있다는 사실도 새삼 느끼게 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산업적으로 덩치를 불려가는 오늘의 한국영화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삶의 절실한 문제와는 별 관련없는 허황된 농담같은 허술한 시나리오와 연기력 미달의 주연 배우들로 화면만 번지르르하게 찍어낸 수준 낮은 대중영화를 주력상품으로 내놓는 동안, 이란이 ‘영화 선진국’에 얼마나 더 다가가고 있는지를 실감했습니다. 오랜만의 수작(秀作)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제자리 걸음하는, 아니 뒷걸음치는 듯한 우리 영화가 떠올라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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