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숨어서 "왜 물·전기 없나" 투정하던 카다피… 정육점에 전시돼

입력 2011.10.24 03:01 | 수정 2011.10.24 11:09

[카다피의 마지막 나날] 공습 두려워 2~3일마다 이동, 부하가 구한 음식으로 연명
항전 독려하려 위성전화 걸어… 당초 새벽 3시에 이동 계획, 친위대 집결 늦어 아침 8시에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전 국가원수는 고향 시르테에 숨어 있는 동안 버려진 민가에서 부하들이 구해온 쌀과 파스타를 먹고 살았다. 카다피는 나토의 공습이 두려워 2~3일마다 은신처를 옮겼다. 그러나 도피 생활이 두 달 가까이 이어지자 카다피는 힘들어했다. "왜 전기가 안 들어오는 거지?" "왜 물이 없는 거야?"라고 자주 말할 정도로 현실감각도 없었다.

민가서 구한 쌀·파스타로 연명

카다피와 함께 시르테를 탈출하다가 생포된 리비아 인민수비대 사령관 만수르 다오 이브라힘은 22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카다피의 마지막 도피 생활을 털어놨다. 이브라힘은 카다피의 사촌으로 정보 및 지원병 부대를 지휘한 최측근 인물이다.

카다피는 시르테에서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읽으며 하루를 보내고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했다고 이브라힘은 밝혔다. 컴퓨터가 없어 인터넷을 사용할 수도 없었고 전기도 자주 끊겼다.

카다피 지지자들은 카다피가 최전선에서 전투를 독려하고 있다고 선전했지만 사실 카다피는 전투에 나선 적이 없었으며 총 한 발 쏘지 않았다고 이브라힘은 말했다. 외부와 연결된 유일한 끈은 위성전화였다. 카다피는 이를 통해 시리아 TV 방송에 '결사 항전'을 독려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지지자 결집을 위해 사용한 위성전화가 나토군의 정보망에 잡혀 결국 자신의 최후를 앞당긴 셈이 됐다.

나토군 공습과 시민군의 진격으로 카다피 일행이 은신한 집에 포탄이 떨어져 경호원 3명이 부상하기도 했다. 요리사도 크게 다쳐 이후 카다피 일행은 모두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이브라힘은 "사느냐 죽느냐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카다피 시신, 정육점 냉동창고에

카다피는 트리폴리가 함락된 지난 8월 21일 측근과 경호원 10여명과 함께 트리폴리에서 남동쪽으로 80㎞ 떨어진 산악지대 타루나와 카다피 지지세력이 포진한 바니 왈리드를 거쳐 시르테로 들어갔다. 무타심이 시르테로 도피할 것을 주장했다고 한다. 무타심은 시르테가 누구도 생각하기 어려운 마지막 도피처라는 이유를 댔다.

이브라힘을 비롯한 측근들은 도피 중 카다피에게 여러 차례 해외 망명을 건의했다. 그러나 카다피는 "여기가 내 나라다. 나는 이미 1977년에 (국민에게) 권력을 넘겨줬다"고 말했다. 특히 무타심은 카다피가 권력을 포기하는 것을 강력히 반대했다고 한다.

카다피는 시민군의 포위망이 좁혀온 지난 20일 은신처를 옮기기로 했다. 자신이 태어난 생가 인근 주택으로 갈 생각이었다고 한다. 당초에는 40대 이상 차량을 이용해 이날 오전 3시 빠져나가려고 했으나 친위대 집합이 늦어져 오전 8시가 돼서야 출발했다.

카다피는 SUV 차량인 도요타 랜드크루저에 이브라힘과 경호대장, 친척 한 명, 운전사와 함께 탔다. 카다피는 이동 내내 별다른 말이 없었다고 한다. 출발 30분 후 나토군의 폭격이 시작됐다. 이브라힘은 "파편에 맞아 정신을 잃었고 깨어보니 병원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시르테에서 서쪽 미스라타로 옮겨진 카다피의 시신은 22일 한 시장 정육점 냉동창고 안에 전시됐다. 리비아 시민들은 냉동창고 안 매트리스 위에 누워 있는 독재자의 모습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했다. 수많은 구경꾼이 카다피의 최후를 확인하려고 길게 줄지어 섰고 일부는 "알라는 위대하다"고 외치며 기뻐했다고 외신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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