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발음으로 영어 못 배우겠소!"

조선일보
  • 신용관 기자
    입력 2011.10.22 03:05 | 수정 2011.10.22 06:03

    일본식 영어 발음 불만, 교사 교체 요구하기도
    독립신문엔 교습광고… 조선말에 분 영어 바람

    영어, 조선을 깨우다(전2권)

    김영철 지음|일리|각 384, 350쪽|각 16000원

    1920년 5월 12일자 조선일보 3면에 '두 번째 보성교(普成校)의 휴학'이란 기사가 실렸다. 이 학교 3학년 학생 45명이 닷새 전부터 수업을 거부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가 일본 사람의 영어요, 영국 사람 영어가 아니다"고 하면서 "일본인은 원래 발음이 불량하여 그 발음대로 배워서는 세상에서 활용할 수 없으니 다른 조선 사람으로 영어 교사를 변경해 달라"고 요구했다.

    신간 '영어, 조선을 깨우다'는 영어를 중심으로 우리의 근대사를 일별한다. 현직 기자인 저자는 일제시대 신문기사, 학술 논문, 관련 서적 등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 근대의 모습을 꼼꼼하게 복원하고 있다.

    1883년 9월 미국에 도착한 조선의 첫 외교사절 보빙사 일행이 찍은 기념사진. 앞줄 왼쪽부터 홍영식, 민영익, 서광범, 미국인 로웰.

    기록상 영어 사용자가 조선 땅에 첫발을 디딘 것은 1797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210년 전 처음으로 영어가 한반도에 출현한 것이다. 당시 부산 동래 용당포 앞바다에 표류한 이국의 배는 브로튼(Broughton) 함장이 이끄는 영국 함선 프로비던스(Providence)호였다. 이들은 1653년 네덜란드인 하멜 이후 조선에 상륙해 조선인과 접촉한 최초의 서양인이다. 조선 연안을 탐사할 분명한 목적을 갖고 온 영국의 브로튼 일행을 맞아, 조선 관리들은 "역학(譯學)을 시켜 그 국호(國號) 및 표류해 오게 된 연유를 물었더니, 한어(漢語) 청어(淸語) 왜어(倭語) 몽골어(蒙古語)를 모두 알지 못하였다"고 기록했다.

    미국에서 귀국한 서재필이 1896년 4월 7일 창간한 '독립신문'은 근대적 여론 형성의 기틀을 마련했다. "독립신문 창간은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정동구락부, 정동파, 친미파 등으로 불린 영어파 세력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이뤄졌다." 4면 가운데 3면은 한글 전용 '독립신문'으로 편집하고, 마지막 1면은 영문판 'The Independent'로 편집하였다. 1898년 7월 4일자 독립신문에는 영어 교습 광고도 실려 있다. "대한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고자 하나 학교에는 다닐 수 없고, 또 선생이 없어서 못 배우는 이가 많다 하기로, 영국 선비 하나가 특별히 밤이면 몇 시간씩 가르치려 하니, 이 기회를 타서 종용히 영어를 공부하려는 사람들은 독립신문사로 와서 물으면 자세한 말을 알지어다." 조선에서 영어의 수요가 그만큼 풍부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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