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80대 참전용사가 의사당 지키는 美國, '5000원의 나라' 국회에는 몇 명이나…

조선일보
  • 이하원·정치부
    입력 2011.10.19 03:06

    37년째 보상금 5000원 누구도 문제제기 안해, 美노병이 이 얘길 듣는다면…

    이하원·정치부
    #1. 2007년 10월 미 매사추세츠주의 우스터시(市). 보스턴에서 자동차로 1시간 30분이 걸리는 작은 도시에서 '한국전 참전 기념 동상' 건립식이 열렸다. 주(州) 차원 행사가 아니라 6·25 참전 용사 출신의 실업인이 추진한 소규모 행사였다.

    행사장 맨 앞줄엔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지낸 존 케리 상원의원이 앉아 있었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동생인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 의원도 눈에 띄었다. 두 사람은 시간을 분(分) 단위로 끊어 쓰는 정계의 거물이다. 주최 측은 2002년 제2연평해전 전사자인 한상국 중사의 부인 김종선씨를 두 의원의 옆에 앉게 했다. 외국인이지만, 최근에 사망한 전사자를 추모한다는 의미였다. 김씨는 "어떻게 전사자를 예우하는 게 이렇게 다를 수 있느냐"며 눈물을 흘렸다.

    #2. 군 복무 하면서 알게 된 미군 장교 다니엘 아우트리씨와 1996년 미국을 여행할 때 일이다. 휴가를 받은 그는 여행 내내 사복을 입었다. 워싱턴 DC를 관광하는 날 아침에 그는 군복을 입고 호텔방을 나왔다. 의아해하는 기자에게 "워싱턴 DC에서는 군복을 입으면 더 예우를 받는다"며 웃었다. 링컨 기념관과 6·25 참전 기념비가 있는 내셔널 몰을 관광할 때 그처럼 군복을 차려입은 이를 수도 없이 만났다. 그가 살던 노스캐롤라이나주 파옛빌의 연방 하원의원 사무실에서는 "나라를 위해 수고해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커피를 얻어 마시고 나왔다. 군부대 밖으로만 나오면 어떻게 해서든지 군복을 벗으려 하는 한국을 떠올렸다.

    #3. 지난 13일 이명박 대통령이 미 상·하원 합동 연설을 할 때 6·25 참전 용사 출신 의원들이 호명됐다. 찰스 랭글, 존 코니어스, 샘 존슨, 하워드 코블 의원 등 4명이었다. 이들은 모두 여든이 넘었지만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이들 외에도 존 매케인 전 공화당 대통령 후보를 비롯한 베트남전 참전 군인 출신도 상당수 현역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 연방 의회는 유서 깊은 로텐더홀에 전쟁포로·실종자를 상기시키는 깃발을 걸어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있다.

    기립박수 받는 6·25 참전용사 출신 美의원들 - 지난 13일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연방하원 본회의장에서 6·25에 참전했던 의원 4명을 호명하자 일어난 존 코니어스 의원(가운데 왼쪽), 찰스 랭글 의원(가운데 오른쪽)이 동료 의원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6·25는 우리의 전쟁이었다. 우리가 살기 위해 싸운 전쟁이었다. 미국에선 6·25 참전자 4명이 현역 의원으로 활동하는데 우리 국회엔 6·25 참전 의원이 한 사람도 없다. 베트남전쟁 참전자도 쉽게 찾을 수 없다. 나이가 조금만 들어도 퇴물 취급하는 풍토도 문제겠지만 우리 사회엔 참전자에 대한 존경과 경외심 자체가 없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4. 정부가 6·25 전사자 유족에게 보상금으로 5000원을 주었다.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37년째 그렇게 해왔는데도 언론을 포함해 우리 사회 어디에서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피흘려 우리를 지켰다는 자부심이 손톱만큼이라도 있는 나라라면 이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흘린 피를 폄훼하고 매도하는 것을 잘난 것인 양하는 풍조마저 만연하고 있다.

    5000원이면 미국 돈으로 4달러 가 약간 넘는다. 한국 대통령으로부터 이름을 불리고 감격했을 미국의 참전 노병 의원들이 '한국의 4달러 이야기'를 들었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궁금하다. 죽어서 4달러를 남긴 그 한국 군인들은 미국 노병 의원들의 전우이기도 했다. 그들이 세계 10위권 경제 국가에서 벌어지는 이 '놀라운' 이야기를 듣지 않게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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