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간 사망자로 산 전과8범 '산사람' 되다

조선일보
입력 2011.10.19 03:06

법원 나서 실종 선고 취소 "이제 타일공 돼 열심히 살 것"

국민참여재판이 열린 18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상습 절도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모(44·무직)씨가 배심원들을 향해 울먹였다.

"교도소에서 나온 뒤 필사적으로 호적을 회복하려고 했지만 경찰·구청·검찰·법원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어요. 신분증이 없다고 인간 취급도 안 했습니다."

이씨는 지난 6월 22일 새벽 3시쯤 서울 종로에서 취객의 지갑을 훔친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됐다.

경찰이 주민등록 조회를 했지만 놀랍게도 '사망자'였다. 전과 기록도 삭제돼 없었다. 경찰은 교도소 수감 기록과 지문을 확보해 그가 이씨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전과는 판결문을 통해 드러났다. 그는 1986년 이후 25년 동안 8차례나 절도죄로 실형을 살았다.

이씨는 "누군가 제기해 법원이 내린 실종 선고로 죽은 사람이 돼 취직도 못 하고 생계가 막막해 지갑을 훔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씨는 1967년 강원도 주문진에서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를 잃었다. 어머니는 가출했고 할머니가 동냥 젖을 얻어 이씨를 키웠다. 큰아버지가 이씨를 아들로 출생 신고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가출해 주방 보조일과 막일을 했다. 친척들은 1992년 큰아버지가 사망하자 이씨에 대해 실종 선고를 신청했고 1995년 선고가 확정돼 죽은 사람이 됐다.

당시 이씨는 절도죄로 안양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이씨의 사촌형은 "동생이 교도소에 살아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다"고 했다.

이씨는 이후에도 5차례나 절도죄로 교도소를 들락거렸다. 호적상 사망한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고 기소돼 처벌까지 받았던 것이다. 검·경도, 법원도 이씨가 호적상 사망한 사람임을 확인했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실종 선고가 확정되더라도 호적상·민사상 법률관계만 소멸될 뿐 형사 범죄를 처벌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산 사람'이 된 것은 지난 8월. 서울중앙지법 김형두 부장판사와 남현우 변호사가 나서 실종 선고 취소소송을 도왔다.

이날 검찰은 징역 3년을 구형했고 김 부장판사는 같은 형을 선고했다. 이씨는 "다시 '산 사람'이 됐으니 죗값을 치르면 타일공이 돼 정말 열심히 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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