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승철과 소년재소자 합창단 '희망의 하모니'

입력 2011.10.19 03:08 | 수정 2011.10.19 14:44

음악선생님 이승철 - 엇나갔던 아이들 보듬어 내달 가족 초대 공연 연습
"우리 부끄러워하지 말자"… "저희 때문에 고생 많으시죠" 노래하며 울며 꿈을 되찾다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가을 햇살이 유난히 따뜻한 18일 오후, 교실의 열린 문 틈 사이로 '거위의 꿈'이 들려왔다. 아이 18명이 모여앉아 화음까지 넣어가며 열심히 부르고 있었다. 어느 남자 고등학교의 음악시간 같지만, 아이들이 입은 것은 교복 대신 죄수복.

이곳은 경북 김천 소년교도소다. 강력 범죄를 저질러 형이 확정되거나 재판 중인 만 19세 미만의 소년범을 만 23세까지 수용하는 전국 유일의 시설이다.

"'그래요' 하면 너무 딱딱하니까 '그래이~요'라고 좀 통통 튀게 불러봐." 팔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지도에 열심인 합창 선생님은 '라이브의 황제' 이승철.

이승철은 지난 9월 이 교도소의 음악선생님 겸 지휘자로 깜짝 '부임'했다. 재소자들로 꾸려진 합창단을 연습시켜 다음 달 김천 시내에서 가족 등을 초대해 공연을 여는 프로젝트를 앞장서서 이끌고 있다.

이승철에게 합창단을 맡아달라는 '영입 제의'가 들어온 것은 지난 7월. 소년범 교화 프로그램 차원에서 법무부와 한 다큐멘터리 제작사가 아이디어를 냈고 이승철의 의향을 타진했다. 살인, 강도, 연쇄절도 등 무거운 범죄전력을 지닌 청소년들을 보듬고 가르쳐야 하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는 주저 않고 '재능 기부' 차원에서 자원봉사에 나서기로 했다. "저의 노래하는 재능을 이렇게 뜻깊게 기부할 기회가 어디 있겠어요? 그리고 이 애들 또래 때 제 모습을 떠올리면…." 이날은 네 번째 수업이었다. 앞으로도 10여 차례 김천에 더 내려갈 예정이다.

가수 이승철이 수감자들로 합창단을 만들어 공연하는 내용의 영화‘하모니’를 경북 김천에서 재현하고 있다. 김천 소년교도소 재소자 합창단을 가르치는‘선생님’으로 나서 재능 기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승철이 18일 김천에 내려가‘제자’들을 지도하고 있는 모습. /김천=남강호 기자 kangho@chosun.com
가수 이승철이 수감자들로 합창단을 만들어 공연하는 내용의 영화‘하모니’를 경북 김천에서 재현하고 있다. 김천 소년교도소 재소자 합창단을 가르치는‘선생님’으로 나서 재능 기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승철이 18일 김천에 내려가‘제자’들을 지도하고 있는 모습. /김천=남강호 기자 kangho@chosun.com
재소자 대부분은 결손가정이나 저소득층 출신이다. 눈앞에서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평생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이, 선배들의 협박에 못 이겨 억지로 폭행에 가담했다 살인범이 된 아이, 부모가 모두 장애인이어서 학창 시절 내내 친구들의 조롱에 시달렸던 아이….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것과 별개로 합창단원 중에는 딱한 사연을 가진 경우가 많다.

지난 달 첫 수업에서 이승철이 가장 먼저 한 말. "우리 쪽팔려(창피하다는 뜻의 비속어)하지 말자. 형이랑 재미있게 해보자!" 쭈뼛쭈뼛 앉아있던 아이들의 표정에 웃음이 번졌다. "어휴 알죠. 저 나이에 노래 부르고 친구들 손잡고 하는 게 얼마나 쑥스럽겠어요?" 네 번째 만남이지만 이승철은 합창단원들의 얼굴과 이름, 집안 사연과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줄줄이 꿰차고 있다. 한 주 한 주 지나며 수업 분위기는 달아올랐고, 이제는 "저희 때문에 고생 많으시죠"라며 먼저 다가서는 아이도 많아졌다.

징역 13년을 선고받아 복역 중인 이수현(18·가명)군은 "열심히 연습해서 공연 때 친부모 대신 저를 길러주신 할머니 앞에서 멋진 공연을 펼칠 것"이라고 했다. "전 2022년이 돼야 출소해요. 원래는 창업해서 성공하고 싶었는데, 음악이 너무 즐거워서 미래에 어떤 일을 할지 생각 좀 해야겠네요."

이승철은 아이들에게 아주 힘든 과제를 내줬다. '지금 가장 생각이 나는 누군가에게 직접 손글씨로 편지를 써오기'. 지난주 '숙제 발표 시간'에 교실은 눈물바다가 됐다. 잘못을 뉘우치며 부모님께 쓴 글, 자신의 범죄로 숨진 희생자에게 뒤늦게 용서를 구하는 글, 자기는 욕해도 부모님은 손가락질하지 말아달라며 세상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글 등을 읽을 때는 이승철의 눈가에도 이슬이 맺혔다. 이승철은 그 편지들의 내용을 하나도 빼먹지 않고 받아 챙겨 '비밀 작업'에 들어갔다. "이렇게 절절하고 아름다운 가사 보셨어요? 곡을 붙여야죠. 저와 아이들이 함께 부를 겁니다. 음반으로도 만들 거예요. 기대하세요. 명곡이 하나 탄생할겁니다."

다음 달 말 이뤄진 '이승철 선생님' 지휘 김천 소년교도소 합창단의 특별 공연은 성탄절을 전후해 'SBS스페셜'을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18일 김천 소년교도소에서 재소자 합창단을 가르치고 있는 이승철. “합창 대회가 끝난 뒤에도 계속 인연을 맺고 아이들을 돕겠다”고 했다. /남강호 기자 kangho@chosun.com
18일 김천 소년교도소에서 재소자 합창단을 가르치고 있는 이승철. “합창 대회가 끝난 뒤에도 계속 인연을 맺고 아이들을 돕겠다”고 했다. /남강호 기자 kangh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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