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늙은 집도 이 남자 만나면 회춘

조선일보
  • 채민기 기자
    입력 2011.10.19 03:10

    ['낡은주택 수리 전문 건축가' 김재관의 실험]
    "아파트 재개발만 기다릴 것 없어" 80년대 지은
    어두컴컴한 단독주택, 나무 커튼·연못으로 빛 수혈
    해외 유명 디자인 사이트에도 소개

    김재관씨
    '낡을수록 좋다.'한국에서 집과 관련해 통용돼온 명제 가운데 하나다. 여기엔 생활공간인 집을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보는 시선이 반영돼 있다. 낡을수록 재건축이나 재개발 대상이 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오래된 집이 불편해도 참고 사는 것이 당연시됐다.

    김재관(49·무회건축사사무소 대표)씨는 이런 낡은 집을 수리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건축가다. 그도 원래는 다른 건축가들처럼 신축 설계를 했다. 제주 서귀포시 강정동 강정교회(1998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수상), 경기 고양시 도내동 풀향기교회(2010년 경기도건축상 수상) 등 전국 교회 20여곳을 설계했다.

    국내에서 건축가가 신축 건물의 설계가 아니라 기존 주택의 수리만을 전문으로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국내 건축계에서 김 대표의 작업은 아직 '실험' 단계지만 눈 밝은 해외 전문가들은 이미 그 가치를 인정했다. 유명 디자인 사이트인 디자인붐(designboom.com)과 디진(dezeen.com)에 김 대표의 작업이 소개된 것. 이들 사이트에 작품이 소개된다는 것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완성도를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최근 서울 순화동 사무실에서 만난 김 대표는 "재건축·재개발에 포함되려면 집을 낡도록 둬서 '멀쩡하지 않음'을 입증해야 했다"며 "집 수리는 이렇게 방치돼온 집을 쾌적하고 편안한 주거공간으로 되살리는 작업"이라고 했다.

    2009년 수리한 서울 서초동 단독주택의 2층 모습(아래 사진). 왼쪽에 세로로 늘어선 나무 커튼으로 외부 시선을 가렸다. 창문 앞 사각형 연못은 빛을 실내로 반사시킨다. 수리 전(위 사진)에는 2층 전체가 밖으로 열려 있어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힘들었던 곳이었다. /사진가 박영채
    집 수리를 시작한 계기는 2009년 서울 문화의 밤 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일일건축설계사무소'였다. 좌판을 열고 시민들과 건축 관련 상담을 하던 중 집을 고쳐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손봐야 할 곳의 목록과 예상 비용 등을 공책 한 권에 빼곡하게 적어 온 건축주의 진지함에 매력을 느껴 맡았던 프로젝트가 전문 분야를 신축에서 수리로 바꾸는 출발점이 됐다.

    일일건축설계사무소에서 의뢰를 받아 처음으로 진행한 수리 프로젝트는 서울 서초동의 단독주택이었다. 1980년대에 지어진 2층 주택으로 대문 앞의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의 다세대주택 건물과 마주 보고 있다. 건축주는 "밖에서 집 안이 훤히 들여다보여서 여름에도 창문에 두꺼운 커튼을 치고 산다"고 호소했다. 김 대표는 '나무 커튼'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각목처럼 길쭉한 나무를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 붙인 구조물로 창문 바깥을 가렸다. 김 대표는 "완전히 밀폐되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외부의 시선을 차단하면서도 통풍을 방해하지 않는다"고 했다.

    남향이지만 집 내부가 깊어 창문 근처만 환할 뿐 안쪽은 어두컴컴한 점도 문제였다. 이 문제는 물로 해결했다. 2층 창문 바깥에 작은 연못처럼 물이 고이는 자리를 만들었다. "외부의 빛이 물에 반사돼 2층 거실 천장까지 도달하게 한 장치다. 천장에서 반사된 빛은 1층에서 올라오는 계단을 통해 1층 거실까지 닿는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수리한 서울 연희동 아파트의 전(위)과 후. 거실 바닥에 그대로 눕는 일이 많은 건축주 가족을 위해 베란다에 나무 바닥을 깔아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김 대표는 설계뿐 아니라 시공까지 직접 챙긴다. 이 프로젝트의 경우 시공사를 통하지 않고 직접 인부들을 모집해 공사를 지시하고, 때로는 연장을 들고 함께 일했다. 그는 "시공사에서 견적을 받은 공사비용보다 1억원가량을 절약할 수 있었다"고 했다.

    '수리 전문'으로 알려지면서 집을 고쳐달라는 주문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설계한 서울 연희동 주택 역시 1980년대에 지어진 보급형 단독주택이다. 김 대표는 "프라이버시 문제나 채광, 통풍 등 당시 지어진 단독주택이 안고 있는 문제는 대부분 비슷하다"고 했다. 서초동 주택처럼 나무 커튼과 연못을 활용해 프라이버시와 채광문제를 해결했다. 1층 거실의 나무 바닥을 베란다처럼 건물 바깥까지 확장해 무용을 전공한 건축주가 연습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김 대표는 "집 수리로 우리의 주거문화에 하나의 대안을 제시하고 싶다"고 했다. "아파트로의 재개발을 기다리는 동안 주택은 방치돼 왔다. 아파트가 지어지기만을 기다릴 게 아니라 생활의 변화에 맞춰 집도 고쳐가며 살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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