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년 전 퇴계 이황을 불러내다

입력 2011.10.19 03:11 | 수정 2011.10.19 03:11

도산서당 창건 450주년… 안동서 특별 행사 줄이어
유림 80여명 모여 告由의식 "중국에서도 이런 의식 없어" 中·日 유학자들도 감탄

"단기 4344년 세차 신유 9월… 소생 한국국학진흥원장 김병일 등은…."

18일 아침 경북 안동 영지산 기슭 도산서원 뜰에 의관을 정제한 유림 80여명이 구름처럼 도열했다. 퇴계 선생 위패를 모신 상덕사(尙德祠) 앞이다. "국화 피는 가을철을 맞으니 앙모하는 마음 더욱 간절하네. 이제 지극한 덕을 천양하고자 장차 특별전을 열려고 할 제 삼가 책과 향을 바치오며 그에 앞서 사유를 고하노라."

구령에 맞춰 일제히 허리를 조아려 절하는 데는 칠순 백발 노학도 한 동작이다. 도산서당 창건 450주년을 맞아 특별 행사 시작을 사당에 아뢰는 의식, 고유(告由)다. 이른 아침부터 퇴계 종택 16대 종손은 물론 선생의 문하 종손가 후손들이 이곳에 모여든 데는 이유가 있다.

서원 초입 우편에 있는 도산서당은 퇴계가 벼슬에서 물러난 후 학문을 닦고 제자를 가르치던 곳. 손수 설계해서 지어 올린 한옥이 지금도 소담한 풍 그대로다. 평생을 경(敬)의 자세로 일관하며 '학자 이전에 사람'을 길렀던 선생의 자취를 직접 느껴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이곳은 선생 사후 4년 뒤 선조가 편액을 내려 도산서원(1574)으로 규모가 커지면서 사원의 모태가 되었다.

도산서당 창건 450주년을 맞아 18일 안동 도산서원에서 유림 80여명이 퇴계 선생의 위패를 모신 상덕사 앞에서 특별 행사의 시작을 아뢰는 고유 의식을 거행하고 있다. /안동=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퇴계는 서당을 직접 설계했고, 이름도 붙였다. '도산(陶山)'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 질그릇을 굽듯이 인격을 도야하는 곳. 둘째 '귀거래사'를 지은 도연명을 본받아 은거한다는 뜻. 셋째 질그릇을 굽는 신분에서 천자가 된 순임금과 같은 성인을 본받는다는 의미다. 이곳에서 퇴계가 길러낸 제자만 309명에 이른다. 이들은 유학의 나라 조선을 떠받친 기둥이 되었다.

이날 국제 학술대회 참석차 방한한 중국일본의 유학자들도 진풍경에 눈을 크게 떴다. 중국 호남대 악록서원(중국 4대 서원 중 하나)의 장계휘 교수는 "이런 순수한 유교 의식은 중국에서도 보기 힘든 것"이라며 "이곳에 이런 전통 의례가 남아 있는 게 놀랍다"고 했다.

이날 기념행사는 고유를 필두로 특별 전시회와 세계유교문화포럼 창립 국제 학술강연회로 이어졌다. 인근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에서 개막된 특별전 주제는 '경의 마음으로 사람을 빚다.' 퇴계와 제자들의 언행을 집중 조명하는 자리다. 선조유묵 18책(보물 584-2호)을 비롯해 도선서원과 퇴계 종손가 등이 기탁한 10여만점 중 엄선한 유물 55점이 가지런히 놓였다.

특히 '가서(家書)'가 눈길을 끈다. 퇴계가 아들과 손자들에게 무릇 선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훈계하고 학문을 권면하는 편지 글이다. 1570년 선생의 손자인 이안도에게 보낸 서신에는 퇴계의 인간관이 선명하다. 증손자가 젖이 모자라 아프니 노비를 유모로 보내 달라는 손자의 요청을 두고 퇴계는 거절로 답한다. 비록 남의 노비일지라도 그의 자식 또한 소중한 생명이므로 "내 자식을 살리기 위해 남의 자식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없다"며 두 아이를 모두 살리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한다. 결국 증손자는 세상을 뜬다.

퇴계가 제자 조목에게 보낸 서신 모음인 '사문수간'과 제자 권호문에게 글씨 교본으로 써준 '퇴도선생필법'(보물 548호)에는 사제지간의 각별한 정이 행간에 어른거린다. 제자들은 존경하는 스승이 머물 건물을 짓고자 했고 스승은 이를 말리는 내용이다.

그 밖에 퇴계의 제자 80여명의 편지와 글씨를 모은 '도산제현유묵'(5책), 조선 후기 선비 화가인 강세황이 그린 '도산도'(보물 522호), 정조 임금이 '사문수간'을 보고 직접 그 감상을 적은 '제선정퇴계간첩후' 등 중요 자료들이 함께 전시된다. 전시회는 내년 1월 15일까지 계속된다.

퇴계 이황 선생의 도산서당 450주년을 맞아 18일 안동 도산서원에서 퇴계선생의 공덕을 알리는 고유를 열고 미공개 퇴계선생의 유품을 전시하는 도산서당 창건 450주년 특별전이 유교문화박물관에서 열렸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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