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김두규 교수의 國運風水(국운풍수)] 우리 민족의 진정한 主山은 백두산이 아닌 의무려산

조선일보
입력 2011.10.15 03:13 | 수정 2011.10.15 19:16

이젠 중국 땅이지만 원래 고조선의 主山
세상에서 상처받은 영혼 크게 치료하는 산

우리 민족의 주산은 고조선의 '의무려산'이다.

우리 민족 최초의 나라이름은 조선이다. '고조선(古朝鮮)'을 말한다. 고조선의 영토는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고 만주땅을 포함한 드넓은 대국이었다. 태조 이성계는 국호를 왜 조선이라 하였을까? 국호를 조선이라고 이름 지은 이는 이성계가 아니라 정도전이었다. 정도전은 이성계와 함께 조선 건국의 창업동지였다. 그가 쓴 '조선경국전'은 조선 최초의 헌법서이다. 이 책에 조선이란 국호가 정해진 내력이 소개된다. 당시 명나라 천자(주원장)는 후보국가명 '화령'과 '조선' 가운데 "조선이라는 이름이 아름답고 또 그 유래가 오래되었으므로 그 이름을 사용하라"고 하였다. 중국에서도 고조선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조선은 개국 초부터 단군을 국조(國祖)로 모셔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고조선의 후예가 바로 조선이다'라는 국사의식을 정립하고자 한 것이다. 신화 속으로 사라질 고조선을 우리 역사에 되살린 것은 정도전과 조선왕조의 덕분이었다. 이와 같이 고조선에서 정통성을 끌어낸 정도전의 영토관은 무엇이었을까? 정도전은 이성계에게 '중국을 제패하여 천자국이 된 변방민족으로 거란족(요), 여진족(금), 몽고족(원)이 있었음'을 설명한다. 그뿐만 아니라 정도전은 군사훈련을 엄격하게 제도화하여 전국적으로 실행케 하였다. 고조선의 옛 땅 요동을 수복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정도전을 죽임으로써 끝이 난다.

고조선이 실존하였음은 일찍이 신채호, 최남선, 정인지 선생 등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였지만, 그 실체를 구체화한 것은 단국대 윤내현 교수이다. 기존에 고조선을 연구할 때 기초 사료로 활용하는 것이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한정된 것뿐이어서 연구에 한계가 있었다. 반면 윤 교수는 중국의 다양한 사료들 속에 언급된 고조선 관련 기록들을 종합하는 방식으로 고조선의 실체를 밝혔다. 그렇게 해서 드러난 고조선은 광대한 제국이었다. 박선희 상명대 교수도 만주와 한반도의 고대 옷차림과 장신구 문화를 통해서 고조선의 영토가 어디인지를 밝혔다. 흥미로운 것은 두 학자가 밝힌 고조선 영역이 일치한다는 점이다. '이미 중국 땅이 되어버린 고조선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괜스레 외교 문제만을 야기하는 것 아닌가?' 중요한 것은 지금도 북한과 만주 땅에 우리 민족이 거주하면서 고조선 이래 민족의 맥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고조선의 주산은 어디일까? 조선조 이래 많은 학자들이 요령(遼寧)성 북진(北鎭)시에 있는 의무려산(醫巫閭山)을 고조선의 주산으로 보고 있다. '세상에서 상처받은 영혼을 크게 치료하는 산'이란 뜻의 의무려산은 흰 바위로 되어 있어 백악산으로 불리기도 하는 명산이다.

'진산(鎭山) 의무려산 아래 고구려 주몽씨 졸본부여에 도읍하다'(허목).
'의무려산은 동이족과 중국족이 만나는 곳으로서 동북의 명산이다'(홍대용).
'북방 영토의 주산이 의무려산인데 그 내맥이 백두산이 되었다'(장지연).

의무려산이 고조선이 활동 무대로 삼은 중심축이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우리 민족의 진정한 주산은 백두산이 아니고 의무려산이다. 이제는 남의 땅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영토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를 잃고 수천 년을 헤매었지만 마음의 성전을 쌓을 수 있었기에 돌로 된 성전을 쌓을 수 있었다. 여기서 '마음의 성전'이란 다름 아닌 '민족의 주산'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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