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관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11일 러시아푸틴 총리가 중국을 방문했다. 중·러 간에 55억달러의 경제협력협정에 서명하고, 1조달러의 잠재적 가치를 지닌 시베리아산 천연가스의 가격도 협상할 것이라고 한다. 양국 간의 에너지 협력 심화는 국제정치 판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에너지 자원 문제는 국제정치의 배후에서 영향을 미쳐온 지 오래다. 2차 세계대전 중에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전쟁을 치르기 위해 필요한 석유를 코카서스 지방으로부터 확보하고자 한 데 있었다. 1941년 군국주의 일본은 석유가 부족하자 네덜란드 지배하의 동(東)인도(현재의 인도네시아)를 공격했고, 미국의 봉쇄에 진주만 공격으로 맞서 태평양전쟁이 시작됐다.

냉전시대에 미국의 중요한 외교목표 중 하나는 중동 산유국들에서 소련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것이었다. 1990년 걸프전쟁에 미국이 개입한 중요 원인 중 하나도 쿠웨이트의 석유자원이 이라크의 수중에 들어갈 경우, 서방으로의 안정적인 석유공급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공격 배경에도 후세인 같은 신뢰할 수 없는 정치지도자에 의해 미국 및 서방으로의 안정적 원유공급이 차단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이제는 미국과 중국이 에너지 확보를 놓고 세계 도처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떠오르는 중국에게는 고속 경제성장을 지속해 공산당의 지지기반을 튼튼히 하려면 에너지 자원 확보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공세적으로 나서고 있다. 중동에서는 미국과 핵개발·인권침해 등 정치문제로 관계가 안 좋았던 이란·리비아 등과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 미국과 각을 세워온 남미의 베네수엘라, 동남아의 미얀마와도 긴밀한 관계에 있다. 중국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이웃 국가들과 강하게 부딪치는 이유 중 하나도 해저에 매장되어 있는 에너지 자원 때문이다.

에너지와 관련해서 중국의 또 다른 깊은 관심사는 에너지 수송로의 안전확보 문제다. 중국이 수입하는 중동산 석유는 말라카해협을 거쳐 수송되고 있다. 그런데 만일 대만문제 등으로 미국과 분쟁이 야기됐을 때, 미 해군이 이 해협을 장악하면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중국 측의 걱정이다. 바로 이 때문에 중국은 오래전부터 육로로 수송할 수 있는 에너지 자원 확보에 열을 올려 왔다. 서쪽으로 육로 파이프라인을 건설해서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에서 에너지를 수송해오고, 남쪽으로 미얀마를 관통하는 육로 파이프라인으로 인도양 쪽으로 직접 빠지는 수송로를 건설해왔다.

북쪽으로는 러시아와 파이프라인을 연결해왔는데 만일 중·러 간에 천연가스 가격협상이 타결되고 에너지 협력이 심화되면 이는 중국의 안전한 에너지 수송 루트가 더욱 다양해지고 그만큼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에서 유리해진다는 이야기가 된다. 더 나아가 중·러간 전략적 협력을 통해 미국과 유럽에 대해 더욱 강한 발언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여기에는 물론 중·러가 오랫동안 상호 견제하고 의심해온 과거의 모습을 얼마만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냐가 변수일 것이다.

이처럼 역동적으로 전개되는 에너지의 국제정치 속에서 한국은 어디로 가야 하나? 최근 러시아, 북한, 남한을 연결하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프로젝트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관건인 북한이 어떤 정치적 이유로든 파이프라인을 닫아버리는 경우에 대한 합리적 대책이 마련되어 타협이 이루어진다면 대단히 바람직할 것이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기대이익뿐만 아니라 한반도 정치정세에 상당한 긍정적 파급 효과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요즈음 국제정치에서 에너지 자원의 확보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온실가스 감축이다. 한국도 상당량의 온실가스 감축을 국제적으로 약속했고 이미 국내적으로 감축 이행단계에 진입했다.남·북간에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등 에너지 협력뿐만 아니라 삼림조성 등을 통한 온실가스 감축으로 환경협력까지 추진해보았으면 좋겠다.

서양속담에 "모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이 있다. 남북관계에도 다양한 측면들이 있는데 이 모든 것을 안보문제에 걸어서 동결시켜 버릴 이유는 없다. 안보문제는 안보문제대로 소신껏 풀어가되, 환경문제처럼 정치적으로 덜 민감하고 우리 국민들도 동의할 수 있는 프로젝트부터 협력해나간다면 상호 이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1992년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에도 남북간에 과학·기술·환경 분야에서 교류 협력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통일부장관도 바뀐 지금쯤 환경협력 프로젝트도 한번 추진해봄 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