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잊혀지는 게… 이제 그만 울고 싶어" 아무도 모르는 '여배우의 죽음'

입력 2011.10.08 03:00

[스포트라이트 증후군]
스타덤 문턱서 좌절 한채원씨, 자살소식 한 달 넘도록 묻혀
정치인·관료·직장인까지… 세상의 주목 떨어지면 우울증

"이제 그만 아프고 그만 울고 싶어. 내가 성공하면 모든 건 해결되지만…."

2002년 데뷔했지만 9년째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무명 여배우 한채원(31·본명 정재은)씨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이런 글을 남기고 지난 8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죽음은 한 달이 넘도록 연예계에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서울 서대문경찰서 등에 따르면 한씨는 지난 8월 25일 오전 3시쯤 서울 서대문구 연희1동 자택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한씨는 2002년 미스 강원 동계올림픽 출신으로 KBS 미니시리즈 '고독'에서 비서 역할로 데뷔했다. 2002~2003년에는 MBC 시트콤 '논스톱3'에서 괴짜 신입생 역할을 맡아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성공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2004년에는 영화 '신석기블루스'로 스크린에도 선을 보였다. 그러나 내리막이 찾아왔다. 잊혀지기 싫어 2009년에는 성인용 섹시 화보도 촬영했고, 지난해 9월에는 디지털 싱글앨범을 내고 가수로도 나섰지만, 잘 풀리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오랫동안 방송 출연 기회가 없던 한씨가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하자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겪은 것으로 조사됐다"며 "그의 일기장에는 '죽고 싶다'는 문구가 많았다"고 말했다.

故 한채원씨

한씨처럼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증으로 자살에 이르는 '스포트라이트 증후군'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 연예인, 정치인만이 아니라 고위 관료, 성공 가도를 달리던 직장인들에게도 번지는 추세다. 이민수 고려대병원 우울증센터 소장은 "대중의 평가에 민감한 사람들은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지면 극심한 상실감을 느끼게 돼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물갔다"는 말이 나오던 연예인들의 자살이 잇따랐던 것도 같은 이유다.

작년 1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삼성전자 이모(당시 51세) 부사장도 전형적인 스포트라이트 증후군 환자라고 할 수 있다. 삼성의 최고 인재로 꼽혔고 고속 승진만 했던 이 부사장은 세대교체로 인사에서 밀려나자 괴로워했다고 주변 사람들은 전했다. 삼성그룹 측은 "인사 강등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한 업계 관계자는 "승진을 거듭하던 이 부사장이 갑자기 한직(閑職)으로 밀려나자 당황하며 굴욕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했다.

쉬쉬하지만 낙선한 정치인들 가운데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가 18대에 낙선한 한 국회의원은 자신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자 스트레스를 받고 절·교회·성당 등을 찾아다녔다"며 "결국 정신과 상담도 받았다"고 했다. 행정부나 법원, 검찰 고위직 출신 가운데 예상 외의 돌출적인 발언이나 행동을 하는 경우도 다시 주목받고 싶다는 심리적인 배경이 깔렸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신영철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교수는 "자신을 주목해주기 바라는 연예인이나 평소 많은 주목을 받았던 사람들은 자신에게 쏠렸던 스포트라이트가 사라지면 자신의 존재 자체가 없어진다고 생각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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