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노트(죽음의 노트). 오늘은 박00입니다. (폭행을 당해) 모서리에 머리 박히고 혼수상태로 병원으로 실려갔다가 병원에서 4개월 동안 오늘내일 하다가 죽게 해주옵소서."
이모(18)군은 평소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인 '싸이월드'의 일기장에 주변인들을 골라 죽음을 기원하는 '데스노트'를 작성했다. '데스노트'는 이름이 적히면 죽게 된다는 노트로, 영화로도 만들어진 유명 일본 만화에서 따온 것이다. 이군은 자기가 싫어하는 누군가가 처참한 모습으로 죽는 소원을 적어 놓았다.
그는 자기들을 험담했다는 이유만으로 동년배 윤모(17)군을 9시간에 걸쳐 경기도 광명시, 서울 송파구 거여동·석촌동 등으로 끌고 다니며 잔인하게 폭행한 혐의로 지난달 구속된 10대 13명 가운데 1명이다.
본지는 이들의 심리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13명의 '싸이월드' 홈페이지를 확인, 남긴 글들을 전문가와 함께 분석했다. 윤군이 9차례에 걸쳐 이들로부터 폭행을 당했던 지난해 9월부터 올해 6월까지 이들의 생각과 심리 상태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비정상적인 잔인함, 상식을 벗어난 자기 옹호, 사회에 대한 적개심, 인생에 대한 비관 등으로 얼룩져 있었다.
윤군을 폭행한 혐의로 13명이 모두 경찰에 연행된 8월 17일 유모(16)양은 싸이월드에 오히려 윤군을 비난하는 글을 남겼다. 유양은 "미친 척 이 글 한번 봐줘. 내가 너한테 존댓말 쓰라고 얘기했잖냐" 라고 썼다.
일기장과 방명록엔 욕설과 비관적인 글이 난무했다. 유양은 지난달 7일 구속 수감 중인 이군에게 "오빠 (구치소에서) 나오면 박치기(복수를 의미) 할 거예요 진짜"라는 글을 남겼다. 유양의 싸이월드를 통해 이군의 것에 접속하자,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자는 말은 개나 줘라. 사람으로 태어나 독하게 살지 않는 한 인생 되는 거 없다"는 글이 있었다. 이군이 올 2월 자신의 일기장에 쓴 것이다.
이들은 누군가를 폭행하기 위해 만나는 것을 '모임'이라고 불렀다. 윤군을 마지막으로 폭행한 6월 21일 '모임'은 윤군의 여자 친구였던 김모(15·불구속)양이 주도했다. 김양은 사건 당일 오후 5시 40분쯤 싸이월드 일기장에 '두고 봐라'라며 폭행을 예고하는 글을 남겼다.
한국청소년상담원 오혜영 상담 조교수는 "잔인성과 지속성으로 봤을 때 이들은 학교 폭력 가해자 중에서도 고(高)위험군에 속한다"며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없고 공격성이 만성화돼 말과 글, 행동에서 폭력성을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자 8명, 여자 5명으로 이뤄진 이들 13명의 평균 나이는 16세. 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는 3명, 나머지 10명은 부모 중 어느 한 쪽과 살고 있었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4명뿐이었다. 나머지 9명은 자퇴를 했거나 퇴학당했다.
평상시 이들은 행인에게서 돈을 빼앗아 PC방과 노래방 등을 전전하며 지냈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들을 조사한 서울 송파경찰서의 한 경찰관은 "청소년 폭력이 갈수록 잔인해지고 있지만, 이 아이들 같은 경우는 치가 떨렸다"고 말했다. 다른 경찰관은 "조사 중에도 반성하기는커녕 줄담배를 피우면서 '감옥 다녀와서 또 보자'는 말까지 하더라"고 했다.
29일 서울동부지법은 13명 중 데스노트를 써 온 이군 등 4명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했고 나머지 2명은 가정법원 소년부로 송치했다. 재판부는 "죄질이 나쁘지만 나이가 어리고, 피해자와 합의를 본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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