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난 27일 취임식을 가졌다. 양 대법원장은 먼저 우리 사법부에 대한 국민 인식이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 원인은 상당 부분 과거 어두웠던 정치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그것이 정당한 면책 사유는 될 수 없다. 사법부의 구성원인 법관들이 우리 사회의 최고 엘리트인 것은 틀림없지만 "똑똑한 사람들만 모아놓은 조직은 집단적으로 우둔해진다"는 경구(警句)를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법관들 마음속에, 주어진 사건들에 대해 '적당한 심리'와 '대과(大過) 없는 판결'에 안주해 버리고, 시대적 문제점을 회피하는 모습이 있어서는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특히 대법원은 더욱 절실하다. 대법원까지 구체적 권리 구제에 매몰돼 버려서는 사법부의 미래가 없다. 이 점이 대법원 재판 운영에 관한 대법원장의 참신한 지도력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따라서 새 대법원장이 청문회에서 밝힌 바와 같이 법원 행정의 일상적인 부분, 즉 '관리'나 '개선'에 관한 부분은 과감히 고등법원장이나 지방법원장에게 넘겨주고, 대법원장은 시대와 함께 열려있는 진지한 내적 고민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눈부신 발전에 비추어 본다면 사법부의 신뢰도는 혁명적인 변화가 요구된다. 혁명의 시대에는 부지런한 군대가 아니라 자율적이고 동기가 부여된 게릴라가 필요하다. 법관 인사를 포함한 사법 정책은 이런 기조에서 이뤄져야 한다. 인류 역사에서 진리와 정의를 수호하려는 목소리는 고귀했으나 항상 소수였다. 그리고 그런 목소리는 흔히 보상받지 못한 충성심으로 남아 불만 요인으로 작용했다. 사려 깊은 지도자라면 백성의 소리를 귀가 아니라 가슴으로 들어,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으로는 성공할 수 없음을 보여줘야 한다.
오는 11월에 있을 새 대법관 두 명의 제청, 내년부터 배출될 로스쿨 졸업생 활용 방안, 앞으로 1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도입될 법조 일원화 방안 등 새 대법원장의 철학과 비전이 펼쳐질 사안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다. 특히 대법원 운영 방안에 관해서는 과감성과 결단력을 기대한다. 개혁의 핵심은 '국민 입장'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렇다면 대법관 증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증원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안, 즉 대법원 2원제, 대법원에서 변호사 강제주의, 상고 이유서 면수(面數)의 합리적 제한 등 타협적 대안도 긍정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대법원의 정책법원화 필요성을 모를 리 없는 재야 법조 단체에도 이해와 협조를 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사법부 '역사 창조'의 토대 마련까지 부탁하고 싶다. 이는 궁극적으로 대통령·국회·검찰·언론 등 인접 영역과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다. 과거 사법부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오늘의 신뢰 수준으로 전락했다. 이제는 장기적 안목에서 미국 대법원 정도의 신뢰 획득을 위한 초석을 만들어가야 한다. "질투는 노력을 해야 받지만, 연민은 거저 얻는다"고 했다. 그동안 우리 사법부는 '연민'에 의존해 왔다. 이제는 '질투'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때가 됐다. 생각 있는 법조인이라면 이런 조치로 우선 과거사 정리와 극복, 독자적 법률안 제안권, 검찰과 확실한 차별화 등 세 가지 정도를 떠올릴 수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부디 영광의 6년이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