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동네 한집 두집 비는데… 울보 목사님 교회는 비좁아요

조선일보
  • 이태훈 기자
    입력 2011.09.24 03:00

    [서울 금호동 옥수중앙교회 호용한 목사 '사랑의 기적']
    모두 빠듯한 살림이지만 1~2만원씩 티끌모아
    대학생 10명에 장학금 주고 쌀·라면도 이웃과 함께 나눠

    재개발이 한창인 서울 금호동 산동네. 옥수중앙교회는 택시도 들어가지 않는 가파른 언덕 위에 서 있다. 이 교회 호용한(54) 목사는 '울보 목사님'이라고 불린다.

    "교회에 교인들이 찾아오면 바나나·귤을 다 까서 내놔야 돼요. 안 그러면 식구들 갖다 주겠다며 가방에 넣어 가져가니…." 이런 이야기를 꺼낼 때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집집마다 사정 다 아는데, 더 어려운 사람 도와주라고 헌금 냈구나 생각하면…" 하며 또 눈가를 훔친다.

    작지만 큰 교회, 서울 옥수중앙교회의‘울보 목사님’은 먹을 것을 들고 교인 집을 찾아갈 때 제일 신이 난다. 호용한 목사가 라면 상자를 들고 한 교인 가정에 들어서고 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2001년 3월 그가 부임한 지 10년, 옥수중앙교회는 '한 해 1억원 이상 이웃을 돕는 착한 교회'로 소문이 났다. 교인 가정 3분의 1이 월수입 120만원을 못 넘기는 가난한 교회에서, 이런 꾸준한 선행은 어쩌면 '기적'이다.

    기적의 시작, 장학기금 2000만원

    처음 부임했을 땐 눈앞이 캄캄했다. 교인 가정을 찾을 때면 가난한 집 특유의 곰팡내와 찌든 음식 냄새가 참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 교회가 내 겁니까. 다 알아서 해 주세요' 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버텼다. 기적은 부임한 지 막 석 달이 지났을 때 시작됐다. 노(老)권사의 팔순 잔치에 참석한 호 목사에게 그 아들이 '새로 부임해 돈 들 일이 많을 텐데 보태 쓰시라'며 2000만원을 건넸다.

    "예배 때 교인들에게 '이걸로 장학사업을 해보자'고 했어요. 가난할수록 자식 잘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오죽하겠어요."

    교인들이 1만~2만원, 많게는 10만~20만원을 냈다. 놀랍게도 1600여만원이 더 모였다. 그렇게 3600여만원을 종잣돈으로 밥 굶는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고, 형편 어려운 대학생들에게 학비를 대줬다. 지금은 학기마다 총 1000만원의 장학금을 대학생 8~10명에게 나눠줄 정도가 됐다.

    혼자 사는 노인 집에 우유를 넣는 봉사도 7년이 넘었다. 작년 12월엔 20년째 홀로 살던 76세 할머니가 "교회도 안 다니는 늙은이에게 5년이나 우유 먹여줘 고맙다"며 방울모자 100개를 떠서 들고 온 일도 있다.

    "가난 때문에 마음 다치지 않게"

    1년에 서너 번씩 쌀 400포대, 라면 400상자를 사서 이웃들과 나누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인근 주민센터 3곳에 나눠 맡기고 직접 가져가게 한다. "교회로 와서 받아가라고 하면 자존심 상할 수 있거든요."

    장학·복지사역에 쓸 돈은 교회 경상비와 별도 계좌로 철저히 관리한다. 사용 내역도 주보를 통해 투명하게 공개한다. 호 목사는 "성탄절 같은 때 '다음 주 헌금은 이웃 돕기에만 씁니다' 광고하면 헌금이 두 배로 늘어난다"고 했다.

    소문이 나면서, 종교와 무관하게 수백만원씩 장학금을 보내오는 경우도 있다. 다 합하면 연 2000만원쯤이다. 돈이 딴 데 새지 않고 원하는 곳에 쓰인다는 믿음을 줬기 때문이다.

    호 목사는 "헌금을 강요하는 말을 해 본 적이 없다"며 "신뢰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내는 것"이라고 했다. 10년 전 150명쯤이던 교인 숫자는 400여명으로 늘었지만, 호 목사는 여전히 교회 험한 일을 봐주는 사찰 집사 한 명 두지 않고 직접 정수기를 닦고, 성경과 찬송가를 정리한다.

    그렇게 아낀 돈은 모두 이웃을 돕는 데 쓰인다. 재개발 중이라 교인이 100가정 이상 이사 갔지만, 교인 숫자는 되레 조금씩 늘고 있다. 이 또한 작은 기적이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