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전 11시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분당테크노파크 C동 701-2호. 입구에 들어서자 다양한 크기와 모양을 한 수십 종의 테디베어(곰 인형)들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166㎡ 규모의 사무실에서는 9명의 청각·지체·지적 장애인들이 8대의 재봉기를 이용해 분주히 테디베어를 만들고 있었다. 이곳은 지난해 2월 '사단법인 소리나눔'과 '한국테디베어협회'가 협력해 청각장애인들의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문을 연 사회적기업 '㈜테디베어팩토리'다.

청각장애인 10명, 지체장애인 2명, 지적 장애인 3명 등 여성 직원 15명이 매달 50여 종 2500~3000개의 테디베어를 생산하고 있다. 테디베어팩토리는 경북 경주와 제주도의 기프트숍(선물가게)은 물론 서울 여의도 63빌딩 등의 매장에 생산품을 공급하고 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일자리 사업으로 출발했지만 올해부터는 지체·지적 장애인들에게도 일할 기회를 주고 있다.

전국 유일 테디베어 전문 제작

테디베어는 그동안 전국에 있는 여러 인형제조업체들이 주문량만큼만 생산하거나 수입에 의존해 왔지만, 테디베어팩토리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테디베어만을 생산하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테디베어팩토리가 처음부터 순조롭게 운영됐던 것은 아니다. 원활한 테디베어 생산을 위해서는 외부와 단절된 장애인들의 닫혀진 마음을 열고 자신감을 가지게 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이 때문에 첫 1년간 테디베어팩토리는 별 수익을 내지 못했고, 사무실 운영비를 겨우 대는 수준에 만족해야 했다. 사회적기업으로 지정받았지만 15명 직원 중 5명에게 월 80만~90만원 정도의 정부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이때문에 수익 창출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들이 만드는 테디베어는 이미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직원들의 교육을 맡고 있는 이미리(60) 실장은 "청각 장애인들은 감각이 예민하고 손끝이 섬세하기 때문에 일반인들보다 훨씬 꼼꼼하다"며 "수화가 안될 때는 만국공통어인 바디랭귀지 등으로 의견을 나누고 있어 장애는 작업에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심상진 테디베어팩토리 부장은 "테디베어를 만드는 일은 솜을 넣을 때도 몸통은 빳빳하게 팔·다리는 부드럽게 만들어야 하는 감성적인 작업"이라며 "장애인들이 자신들만의 발달된 감각으로 만든 테디베어는 인형 시장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고 했다.

지난 16일 오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에 있는 테디베어팩토리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자신들이 만든 테디베어를 선보이고 있다.

테디베어가 건네준 즐거움

청각장애 2급인 최난희(51)씨는 작년 3월 초부터 테디베어팩토리에서 일하고 있는 베테랑이다. 이 일을 하기 전에는 테디베어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최씨는 이제 테디베어 전시회를 직접 찾아다닐 정도가 됐다. 작년 연말에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인형축제도 딸과 함께 직접 다녀왔다. 최씨는 "처음 일을 배울 때는 테디베어 종류가 너무 많아 하나씩 배우고 익히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새로운 샘플이 오면 마음이 설렌다"며 "인형축제에서 '2NE1'등 인기 연예인들이 대형 테디베어를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게 됐다"고 했다.

36살 동갑내기인 노미선씨와 최선희씨 역시 청각장애 2급 장애인이다. 작년 5월에 입사한 노씨는 대학에서 의상학을 전공했고 웨딩업체 등에서 일한 경험도 있었다. 테디베어팩토리에 오기 전에는 가발공장에서 일했지만, 의상 쪽 경험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옷과 모양을 가진 테디베어 만들기에 도전하게 됐다.

노씨는 "1주일에 1~2종류씩 만드는 테디베어가 바뀌니 지금까지 100종류는 만들어 본 것 같다"며 "테디베어는 얼굴은 비슷하지만 크기나 재질, 입히는 옷 등이 천차만별이라 지루할 틈이 없다"고 했다.

지난 6월에 일을 시작한 최씨는 입사 전 5년간 전업 주부로 살아오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자 새로 일을 하게 된 경우다. 최씨는 "결혼 전에는 신사·숙녀복 미싱일을 해 바느질 쪽은 자신이 있었지만, 목과 팔 등 좁은 이음새가 많은 테디베어는 낯설었다"며 "이제 3개월 수습기간이 끝났으니 더 열심히 일할 생각"이라고 했다.

왼쪽다리가 불편해 지체장애 4급인 김귀숙(51)씨 역시 최씨와 마찬가지로 지난 6월부터 테디베어팩토리에서 일하고 있다. 김씨는 원래는 공장에서 화장품을 용기에 담는 일을 해오다가, 성남시청 일자리센터를 통해 테디베어팩토리를 알게 됐다. 관련 업무를 해본 적이 없는 김씨는 3개월 수습기간 동안 바늘에 손이 여러 번 찔리는 등 힘든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도움으로 큰 어려움 없이 일을 배울수 있었다.

김씨는 "이제는 TV에서 테디베어가 나오면 내가 만든 것과는 어떻게 다른지 더 자세히 보게 된다"며 "내 손으로 만든 예쁜 테디베어가 사람들을 웃음짓게 만든다고 생각하니 스스로도 늘 기분이 좋고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