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껴지나요? 자연처럼 따뜻한 인공의 빛

조선일보
  • 곽아람 기자
    입력 2011.09.20 03:03 | 수정 2011.09.21 10:34

    [이진준 개인전 내달 26일까지]
    디지털 미디어라는 차가운 재료로
    아날로그적 감성 '거닐게' 하고싶어

    이진준
    "뒷동산에 올라가 해넘이를 보면 너무나 아름다워 경외감이 느껴지죠. 그런데 해가 진 후 산에서 내려와 도시의 불빛을 마주하면 어떤가요? 안도감이 느껴지잖아요. 사람의 세계로 돌아왔다는 따뜻함. 전 노을지는 것보다 그게 더 좋아요. 자연의 경외감보다는 우리가 만들어 온 인공(人工)의 따뜻함이."

    내달 26일까지 서울 동숭동 갤러리정미소에서 개인전 'Artificial Garden(인공정원)'을 여는 미디어 아티스트 이진준(37)은 '디지털 미디어'라는 차가운 재료로 아날로그적인 따스한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을 한다. "인공의 빛을 내뿜는 디지털 미디어에는 원시시대 사람들이 피운 모닥불과 같은 따스한 감성이 존재한다. 자연의 빛은 결코 그 감성을 재현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 지난해 4월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홍보관 앞에 설치돼 DMC의 랜드마크가 된 공공미술작품 'THEY'가 그의 작품이다. LED 3만2000개로 포옹하고 있는 남녀의 얼굴을 만든 높이 11m짜리 이 작품은 "'미디어 작품은 차갑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서정적 감성을 표현했다"는 이유로 공모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인 작품들도 '인공도 자연 못지않게 아름답다'는 그의 신념을 반영한다. 대표작 '인공정원'은 전시장에 흙을 덮고 그 위에 진짜 잔디를 깔아 가로 7m, 세로 18m의 잔디밭을 만들었다. 잔디밭을 둘러싼 삼면의 벽에 LED 막대 800개를 설치해 잔디밭에 들어선 사람들이 빛줄기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도록 했다. "숲길을 걷다 보면 나뭇가지 새로 비치는 빛의 느낌을 구현하고 싶었어요." 작품의 풀 내음과 흙 냄새는 전시장 천장의 에어컨 팬이 돌아가는 소리와 뒤섞여 인공과 자연 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미디어 아트 전시를 보러 와서 자연을 체험하게 되는 반전(反轉)'이 작가의 의도다.

    이진준의 2011년 작‘S-he’. 조도를 낮춰 빛을 흐릿하게 만든 백열전구 200개를 엮어 높이 170㎝의 조형물을 만들고 군데군데 케이블선으로 전구를 공격하는 듯한 가시를 표현했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사진 작품 'One day, when they leaved(어느 날 그들이 떠났을 때)'는 지난해 어느 여름날 새벽 지리산 숲 속에서 찍었다. 이진준은 등산객들의 발길로 만들어진 숲길에 길이 20㎝가량의 LED 막대 200여개를 깔았다. 새벽 5시30분의 여명(黎明)을 뚫고 LED 막대들이 불을 밝혔다. 인공의 빛은 인간이 남긴 흔적인 '길'을 또렷이 드러내며 이미 지나가버리고 없는 '사람'을 부각시켰다.

    경남 마산 출신인 이진준은 2001년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광고회사에서 영상광고 제작일을 했다. 2003년 서울대 미대 조소과에 편입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태국 오지를 탐험하며 다큐멘터리 영상을 찍곤 했어요. 다큐멘터리 감독이 꿈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뷰 파인더를 들여다보고 있는 나 자신이 유령처럼 엷어져 가는 느낌이 들었죠. 물질적이고 굳건한 노동인 '조각'을 하고 싶어서 조소과에 들어갔어요." 미대를 졸업한 2005년 한 방송사 시사교양국 PD로 입사했지만 1년도 안 돼 그만뒀다. 을지로 일대의 전파상을 기웃대며 독학으로 미디어 기술을 배웠고, 마침내 미디어 아티스트가 됐다. "방송국을 그만둘 때는 갈등도 많았죠. '미래가 보장된 길에서 뛰쳐나온 것이 아닐까…' 고민했어요. 그렇지만 '공중파'의 무게감이 버거웠고, 보다 사적인 일을 하고 싶었죠. 그래서 결심했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

    초기엔 음악과 영상을 결합시킨 작업을 주로 했지만, 이번 전시에는 설치 작품만 내놓았다. "영상 작품은 사람을 '기다리게' 하니까. 이번엔 관객들이 '거닐다' 갔으면 합니다." (02)743-5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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