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판 '재스민혁명'(튀니지에서 일어난 시민혁명) 시위 움직임이 있었던 올해 상황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때보다 더 심각하다. 중국 정부가 긴장한 것도 당연하다. 톈안먼 사태 때는 '민주화'와 같은 이상주의적인 주제로 학생들이 주축이 돼 시위를 했지만 지금 시위가 일어나면 자신의 이익이 침해당하는 데 불만을 느끼는 일반 국민과 노동자들이 가담할 것이기 때문에 폭발력이 더 클 것이다."
톈안먼 민주화 시위의 주역 왕단(王丹·42)이 16일 대만 타이베이(臺北)의 한 커피숍에서 한국 언론과는 처음으로 조선일보와 단독 인터뷰했다. 그는 톈안먼 사태 당시 베이징대 역사학과 1학년이었다. 그는 톈안먼 사건 이후 22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미국과 함께 G2로 불릴 만큼 발전했지만 정치·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후진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2월 인터넷에 재스민 혁명을 촉구하는 글이 올라오자 중국 당국이 민감하게 반응했는데.
"톈안먼 사태가 발생한 1989년에는 동구 사회주의 국가에서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는데, 올해에는 중동이 민주화 시위의 진원지가 됐다. 중국에선 22년 전이나 지금이나 물가·실업률 상승, 공무원 부패는 여전하다. 중국의 사회적 불공평과 빈부격차는 더 커졌다. 지금 중국인들이 품고 있는 개인의 이익과 관련된 불만이 더 큰 폭발력을 가질 것이다."
―중국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는데, 중국인으로서 자부심이 없나.
"지금의 중국은 근육만 있고 두뇌는 없는 사람과 같다. 경제만 성장하지, 정치·환경 등 나머지 분야는 후퇴하고 있다. 인권을 희생하고 사회적 불공평을 대가로 치렀기 때문이다. 이런 성장이 얼마나 지속되겠는가. 성장의 질도 따져봐야 한다. 물가는 계속 상승하고 내수도 정부가 바라는 대로 빨리 커 주지 않는다. 은행 부실 문제도 심각하다. 견제나 감시가 없으니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세계 경제의 의존도가 높은데.
"단기적으로는 괜찮을 수 있다. 하지만 민주화 없는 경제 성장은 결국 사회 모순과 불안을 낳고 이는 세계 경제에도 화근이 될 것이다. 속도만을 강조하는 중국의 미래는 7월 원저우(溫州) 고속철 사고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고가 나기 전까지 승객(국민)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모른다."
―시위 주동자로서, 역사학자로서 톈안먼 시위가 갖는 중요성은 무엇이라고 보나.
"죽은 사람이 있고 민주화도 이룩하지 못했으니 실패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톈안먼 시위는 중국 시민사회 발전의 계기를 마련해줬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 과거 중국에서는 국가와 국민이 직접 상대했다. 하지만 톈안먼 사태 이후 국민에게 총을 쏘는 정부와 국민들 사이에 틈이 벌어졌고 시민사회가 들어설 수 있는 자리가 생겼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뭉쳐 시민사회가 형성되면 민주화의 길도 열리는 것이다."
―일부에선 중국이 톈안먼 시위로 인한 혼란을 빨리 수습하지 못했으면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한다.
"1980년대 초 중국은 정부의 강경 진압 없이도 빨리 성장했다. 시위 참가 학생들의 주장은 급진적이지 않았다. 정부와 대화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무력진압이 없었다면 사회 불공평 문제가 지금처럼 크지 않았을 것이고 더 안정적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당시 중국 정부는 1949년 건국 이후 처음으로 국민들이 자발적인 시위를 벌이자 위기감을 느꼈다. 1989년 톈안먼 광장에서 대량 학살이 일어난 것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학생들이 주로 죽은 곳은 창안제(長安街·톈안먼 앞 대로)였다. 유혈 진압이 있었던 6월 4일 새벽 대부분 학생은 광장을 빠져나온 상황이어서 굳이 발포할 필요가 없었는데도 계엄군은 학생들을 향해 총을 쐈다."
―톈안먼 사태는 당신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내 인생은 톈안먼 시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톈안먼 시위가 없었더라면 지금쯤 중국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인터뷰를 포함해 지금 내가 하는 대부분의 일이 톈안먼 사태와 관련된 것이다. 톈안먼 사태로 내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다."
―요즘 중국의 젊은이들은 톈안먼 시위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하던데.
"정부가 정보를 통제하고 있으니 20대 이하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민주화 열망은 1989년 톈안먼 시절 학생들의 마음에서 지금 젊은층으로 흐르고 있다. 꼭 톈안먼 시위를 알아야 민주화가 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세대가 똑같은 방식으로 민주화를 추진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현 중국 지도층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는 역대 지도부 가운데 가장 평범하다고 할 수 있다. 무슨 일을 해서 말썽을 일으키지 않고 그저 실수를 안 하려고 한다. 차세대 지도부는 지금보다는 활발하게 움직일 것으로 보이지만 어떤 방향일지는 종잡을 수 없다."
―지금 가장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귀국해서 부모님께 자식 노릇을 하고 싶다. 중국 정부가 입국을 허락하지 않아 13년 동안 고향에 못 갔다. 여권이 2003년 만료됐는데 정부가 갱신해주지 않아
[미국]
정부가 발급한 난민증을 갖고 해외를 다닌다. 돌아가면 베이징대 총장이 되는 게 꿈이다."
―톈안먼 시위를 주도한 아들 때문에 부모님이 힘들어하지는 않았나.
"내 뜻을 이해해주셨다. 1990년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면회를 오신 어머니는 '苟利國家生死以, 豈因禍福避趨之(구리국가생사이, 기인화복피추지: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 것이요, 어찌 개인의 화복을 따져 그 길을 피할 수 있겠는가)'라는 청대 정치가 임칙서(林則徐)의 시구를 말씀하셨다."
―청춘을 감옥과 해외에서 보냈는데.
"스무살 때에는 무슨 일이 생기면 무조건 끝장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눈 앞에서 민주화를 이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젊은 혈기만으로 모든 일이 다 되지는 않았다. 후회는 없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감옥에서 책을 1000권 넘게 읽었다. 상황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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