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 칼럼] 안철수씨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문

조선일보
  • 최보식 선임기자
    입력 2011.09.15 23:42 | 수정 2011.09.16 11:20

    그는 좌파가 아니다… 단지 물들기 쉬운 사람
    유복한 의사 집안에 겁이 많아 데모 못해 뒤늦은 콤플렉스로
    연예인 김제동·김여진이 '멘토'로서 커보이는 것

    최보식 선임기자

    '안철수 현상'만 요란할 뿐, 안철수 개인에 대한 분석은 별로 없었다. 그는 여전히 구름 위에 떠 있다. 10년 전쯤 안철수씨를 인터뷰한 뒤 나는 개인적인 소회를 적어놓았다.

    '그는 너무 심하게 예의 바르고 너무 과도하게 겸손하다. 늘 양보하고 늘 순응한다. 내가 알고 있는 인간본성으로는 위장을 하지 않고는 그러한 행동이 나올 수 없다. 그를 만날 때마다 위선(僞善) 여부를 탐색했다.'

    그는 부모님께 한 번도 반항한 적이 없었다. 그의 적성은 공대(工大)였지만 부모가 원하는 의대(醫大)로 갔다. 부모·자식 간이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받는 게 미안해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를 움직여온 동력은 누구에게도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라고 했다. 그는 스트레스를 받아도 직원에게는 편안한 마음을 가진 것처럼 보여왔다고 했다. 술담배도 못하고, 노래방에 가본 적도 없다. 정말 견딜 수 없으면 집안에서 영화를 보는 게 고작이었다. 이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오른쪽)과 박원순 변호사가 6일 서울시장 후보단일화 논의 결과를 발표하면서 껴안고 있다. /조선일보
    그는 성인(聖人) 반열에 들거나 적어도 우리와는 다른 세상에 있는 게 틀림없었다. 나는 이 '예외적인 인간'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엉망진창의 세상에서 너무 착하게 산다는 것은 얼마나 자신의 심신을 갉아먹는 일인가. 그의 영혼이 과연 훼손될지 여부를 지켜보는 탐색 작업은 아직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는 서울의대 대학원 시절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해 무료보급한 뒤로 벤처업계의 간판스타가 됐다. 그때 얻은 명성은 시간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점점 불어났다. 하지만 그가 이를 힘들게 여겼던 시절도 있었다.

    "마치 탤런트의 보여주는 삶처럼 변했다. 내 등 뒤에서 한 사람 두 사람씩 들여다보는가 싶었는데 어느 순간 군중으로 늘어났다. 허영심이 있다면 이런 기분을 즐길 수 있을 텐데 난 그렇지 못하다. 늘 상처받는 쪽이다."

    이런 그가 전국을 순회하며 젊은 대중 앞에 나서 '청춘콘서트'를 여는 것을 보면, 세월 앞에 변하지 않는 것은 거의 없음을 느끼게 한다. 그의 생각, 욕망, 입맛, 스타일도 바뀔 수 있을 것이다. 나잇값도 해야 한다. 그의 강연을 듣고 힘겨운 청춘들이 위로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의 겸손하고 어눌하고 여성스러운 어투는 다행히 변하지 않았다.

    그가 처음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분(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의 말대로 다 따라하지는 않는다. 내게는 김제동·김여진씨를 비롯해 300여명 멘토가 있다"고 말했을 때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 한다는, 누구에게도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그가 자신을 도와준 사람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

    또 그가 "나도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이다.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현재의 집권세력은 '응징'을 당하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래야 역사가 발전한다"고 말했을 때도 놀랐다. 이 '아름다운' 사람의 입에서 우리 같은 사람의 말이 나올 수 있구나. 그의 단호한 언어구사도 낯설었지만, 무엇보다 사고의 깊이와 축적된 독서, 교유관계가 이 정도인가에 더 놀랐다.

    그는 학창시절 글자로 된 것이면 닥치는 대로 봤을 정도로 독서에 빠져 있었다고 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생각에도 골몰했다. 또래와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처럼 자의식(自意識)이 강한 삶은 고통이라고도 말했다. 이런 그라면 역사와 세상에 대해 표출하는 언어가 이렇게 시시할 순 없는 것이다.

    한때 그를 업어오려던 우파는 이제 그를 향해 '정치쇼를 한다' '각본이 있다' '좌파 본색을 드러냈다'고 흥분한다. 하지만 그는 '쇼'를 하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좌파도 아니다. 단지 물들기 쉬운 '나이브한' 사람일 뿐이다. 그는 역사와 세상에 대해 치열하게 숙고하며 자기 전공분야만큼 공부한 적이 없다. "유복한 의사 집안 출신이라 혜택을 더 받았고 겁이 많아 대학시절 데모를 못 했다"는 뒤늦은 콤플렉스로 그에게는 연예인 김제동·김여진씨가 '멘토'로서 커보이는 것이다.

    여전히 그는 살아있는 '대선 카드'다. 그를 불러내는 합창 소리는 더 높아갈 것이다. 살펴보면 그보다 나을 게 없는 인간군상(群像)이 정치를 하는 마당에 그가 못 해낼 리도 없다. 그의 욕망이 어떤 것인지 알 순 없으나, 이미 정치맛을 본 이상 언젠가는 나올 수밖에 없다.

    나도 안철수씨가 선거에 나왔으면 한다. 하지만 어떻게 정치를 바꾸고 세상을 바꿀지에 대한 기대감보다, 그의 실체에 대한 직업적인 궁금증 때문이다. 더 이상 그를 구름 위에 떠 있도록 만드는 것은 옳지 않다. 물론 살면서 나 개인의 바람이 이뤄진 적이 그렇게 많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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