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옆에서 확성기 틀며 투쟁… 노조에 질렸다"

조선일보
  • 이지혜 기자
    입력 2011.09.01 03:17

    [박재갑 국립중앙의료원장 임기 절반 남겨두고 사의 표명]
    세금으로 매년 적자 메우고 민간병원보다 환자 덜 보면서
    의료장비 갖추려 지원받은 올해 정부 지원금 400억원, 모두 월급으로 가져가려 하나

    박재갑(63) 국립중앙의료원장이 "(29일 파업 전야제라고) 입원실 옆에서 임금을 올려달라며 확성기를 틀어놓고 농성을 하는 노조에 질렸다"며 31일 사의를 표명했다. 2010년 4월 현대화를 위해 특수법인으로 전환된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초대 원장을 맡은 지 1년5개월 만이다.

    그는 "공공 병원(국립중앙의료원)이 민간 병원들보다 환자는 덜 보면서 임금을 올려달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박 원장은 30일 아침 7시 출근해 혼자서 짐을 꾸려 나왔고, 보건복지부에 사직서를 보냈다. 그는 국립암센터 1~2대(2000~2006년) 원장으로 재직하며 이 병원을 성공궤도에 올려놓은 성과를 인정받아 국립중앙의료원장에 임명됐었다.

    31일 보건복지부에 사직서를 제출한 박재갑 국립중앙의료원장은 “입원실 옆에서 확성기 틀어놓고 농성하는 노조를 보고 환자에 죄송한 마음 금할 수 없어 책임지고 물러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국립중앙의료원 제공

    ―3년 임기가 아직 절반 이상 남았는데 사의를 표명한 이유는?

    "29일 저녁 병원 나서는 길에 확성기 소리가 났다. 순간 '이제 이 기관을 떠나라'고 하늘에서 보내는 신호로 들리더라. 도대체 아픈 환자 누워 있는 입원실 옆에서 확성기 틀어놓고 공공의료 운운할 자격이 있나. 국민 세금 엄청나게 갖다 쓰는 기관이면 직원들이 100% 똘똘 뭉쳐 병원을 살릴 생각을 해야 하는데…. 정부에서도 망해 가는 의료원 살려보라고 나를 보낸 거 아니겠나. 직원들이 이런 자세라면 힘들다. 어차피 망신당하고 쫓겨날 신세되기 전에 내가 책임지고 내 발로 걸어 나와야지."

    ―경영 책임자로서 노조와의 갈등은 충분히 예상됐던 것 아닌가?

    "우리 식구끼리 대화가 안 된다. 상급단체(민노총을 지칭)가 왜 끼나? 사용자가 직원 임금 착취하고 근무 여건이 점점 악화되고 개선의 여지가 없다면 모를까. 1년5개월 지나면서 점점 좋아지고 있는데…. 나는 노동연구원에서 노동 공부도 했다. 양대 노총 지도부도 나를 지원한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있는 기관에 와서 확성기 틀고 노래 부르나."

    ―임금을 올려줄 여건이 안 되는가?

    "우리는 일반 병원과 다르다. 복지부 산하 공공 병원이다. 정부로부터 1년에 300억원씩 3년간 지원을 약속받았는데, 초기에 집중 투자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해 올해 400억원을 받았다. 낙후된 의료장비도 새로 사고 시설 보수도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어떻게 이 돈을 전부 월급으로 가져가려 하나. 국립암센터는 병상당 우리보다 3~4배 더 번다. 우리는 이렇게 환자 덜 보는데 임금 수준은 별 차이 없다."

    국립중앙의료원 노조는 ▲임금 총액 4.1%+α 인상 ▲환자안전과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위한 노사인력공동위원회 설치 ▲산별 교섭 참가 ▲신입직원 교육시 노조 소개 2시간 ▲국립중앙의료원 매각·이전 중단 등을 병원측에 요구해 왔다. 지난 24~25일 실시한 파업 찬반투표에서 노조원 347명 중 247명이 찬성해 파업이 결정됐으나 29일 저녁 파업 전야제 행사만 열고 예정됐던 30일 파업은 하지 않았다.

    ―국립중앙의료원 상황이 그렇게 어려운가?

    "500병상 규모인 우리 병원은 연간 대략 250억원 적자가 난다. 정부가 매년 지원해주는 돈으로 사실상 적자를 메워온 셈이다. 현금 250억원은 어마어마한 돈이다. 이 돈에다 융자 좀 합치면 웬만한 병원 하나 세울 수도 있다. 물론 우리는 공공 병원이라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을 많이 본다. 정부 지원은 가난한 환자 보는 데 쓰고 나머지는 설비에 투자해야 한다. 언제까지 국민 세금으로 적자 메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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