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을 만드는 사나이

조선일보
  • 변희원 기자
    입력 2011.08.31 03:26

    [타이타닉 등 아카데미상 8회 수상… 특수효과 대가 스콧 로스]
    특수효과만 잘 이용해도 영화 흥행시킬 수 있어
    한국은 아직 초기 단계… 독창성·콘텐츠로 무장해야

    '환상을 만드는 사나이', 세계적 특수효과 전문가 스콧 로스(Ross· 60) inDSP USA 회장이 29일 '2011 국제콘텐츠콘퍼런스(DICON)' 기조연설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DICON은 문화부가 주최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한 국제 콘퍼런스다. inDSP USA는 컴퓨터그래픽 전문회사.

    로스 회장은 1980년대엔 '스타워즈' 시리즈로 SF영화의 신기원을 연 조지 루카스 감독의 특수효과회사 ILM(Industrial Light and Magic) 부사장을 맡았고, 1993년 '타이타닉' '아바타'의 감독 제임스 캐머런과 특수효과회사 디지털 도메인을 세웠다. 그가 총괄지휘한 ILM과 디지털 도메인은 '터미네이터2' '타이타닉' 등으로 아카데미 특수효과상을 총 8차례 수상했다. 29일 서울 강남 한 호텔에서 로스 회장을 만났다.

    영화‘투모로우’의 한 장면. 스콧 로스와 제임스 캐머런이 함께 만든 특수효과 회사 디지털 도메인은 기후 이상변화로 뉴욕이 물에 잠긴 모습을 실감나게 구현했다. /20세기폭스코리아 제공
    ―한국 영화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는.

    "한국은 글로벌 콘텐츠 공급자가 될 수 있다. 한국 영화가 원하는 게 예술적 성취인가, 상업적 성공인가. 예술 하려면 지금 하던 대로 계속 하면 되고, 비즈니스를 하려면 세계 시장에 나가야 한다."

    ―세계 시장 진출은 말처럼 쉽지 않다.

    "요즘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스튜디오는 배급을 주로 하고 직접 콘텐츠를 만들거나 소유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한국은 제작자와 감독, 시나리오 작가를 데리고 독창적인 콘텐츠를 만들고 배급은 할리우드 스튜디오를 통해서 하면 된다. 인도가 이 방식을 잘 활용하고 있다."

    ―독창적인 콘텐츠를 만들려면 돈이 많이 들 텐데.

    "맞다. 자본이 있으면 뛰어난 감독, 작가와 일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엔 돈이 없는 게 아니다. 배나 차를 만드는 데 막대한 돈을 투자하지 않았나. 아직도 지적재산권이 돈이 된다는 생각을 안 하는 것 같다."

    스콧 로스.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영화에서 특수효과가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관객을 끌어들이기 때문에 상업적 측면에서는 가장 중요하다. 박스 오피스 상위 20위에 든 영화 중 18편 정도에 특수효과가 쓰인다. 관객들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것을 보고 싶어 한다."

    ―특수효과가 '못 만든 영화'도 흥행시킬 수 있다는 건가.

    "실례를 들겠다. '투모로우(영어 원제: The Day After Tomorrow)'. 평론가들의 평가가 좋지 않았지만 박스오피스에서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 자유의 여신상이 물에 잠기는 예고편에서부터 관객이 열광했다."

    ―현재 특수효과는 어떤 단계까지 왔나.

    "꿈꾸는 모든 게 가능하다. 대신에 부작용도 있다. 사람들이 예전보다 영화를 대충 찍는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음향 스태프들이 붐 마이크(굵은 낚싯대 모양의 붐에 매단 이동형 마이크)가 화면에 나올까 봐 열심히 들고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렇게나 들고 있는다. 화면에 마이크가 나와도 컴퓨터 그래픽으로 지우면 되니까."

    ―최근 미국 언론들이 3D 회의론을 여러 차례 보도했다.

    "비틀스는 대중음악계에서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50년이 지나도 그 기록을 깰 만한 가수나 밴드는 나오지 않지만, 로큰롤은 계속된다. 아바타는 3D의 시작을 알린 빅뱅이었다. 제2의 아바타를 보긴 힘들 수 있지만 3D는 계속된다."

    ―한국의 특수효과는 어느 단계인가.

    "초기(young) 단계다. 세계무대에 나서야 성장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올림픽 금메달 선수들과 함께 수영시합을 한다면 자신의 최고 기록을 세울 수 있을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세계 시장에 나설 한국 특수효과 회사들에 조언을 해준다면.

    "단연 콘텐츠다. 픽사와 ILM, 보스필름은 모두 유명한 특수효과 회사들이었다. 이 중 특수효과 서비스만 제공한 보스필름은 망했고, ILM은 조지 루카스 덕분에 유지는 되지만 돈을 벌어들이지 못한다. 그런데 픽사는 90억달러(약 9조9000억원)에 디즈니에 팔렸다. 자기들만의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특수효과 산업의 진입 장벽이 낮아지면서 값싼 노동력을 보유한 중국과 인도가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과 차별화를 할 수 있는 건 특수효과 회사에서도 고유의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당신의 성공비결은.

    "약간의 운과 약간의 어리석음. 정말 큰 꿈을 꿨고, 그게 다 이뤄질 거라고 믿었으며 두려움을 가진 적이 없다. 뛰어난 사람들을 모아다가 '당신들은 뭐든 할 수 있다'고 얘기해주면 정말 뭐든 이룰 수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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