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택 고려대 교수·철학

지금 한국 사회는 다양한 갈등과 분쟁의 현장이다. 이념·성별·세대·지역·계층 등에 걸친 갈등과 분쟁이 사회 전 분야에서 나날이 심화되고 있다. 민주화를 이룩했다고는 하지만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 이상의 실질적인 '민주'의 내용과 의미를 만들어가지 못하고 있으며, 국가사업을 두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갈등 역시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만인(萬人)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실감할 만큼 갈등과 분쟁이 일상화돼 버린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그리고 다원성은 한국 사회의 중요한 특징이자 조건이 되고 있다. 이주노동자의 유입과 국제결혼에 따라 다양한 문화들이 한국 문화의 한 부분이 되고 있다. 종교적으로도 가톨릭·개신교·민족종교·불교·유교·이슬람 등 다양한 전통과 가치관이 공존하고 있다. 이런 갈등과 분쟁, 다원성 속에서 서로 소통하고 화해와 상생을 통한 공존은 가능한가?

지난주 불교 조계종이 발표한 '종교평화 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은 그 제목이 말하듯 종교 간 평화 실현이 주된 내용이지만, 선언문의 저변에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바라보는 종교인의 성찰과 고민이 담겨 있다. 조계종의 종교평화 선언은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반목과 갈등을 치유하고 사회적 대통합을 이루기 위한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자임(自任)하는 선언이다. 종교평화는 이러한 역할의 시작이며,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갈등과 분쟁 해결의 모범적 선례(先例)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이념적 갈등과 마찬가지로 종교적 갈등은 해결이 쉽지 않다. 옳고 그름에 대한 배타적 독점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나'의 진리가 옳은 만큼 '저들'의 진리도 옳다고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구나 절대적 진리가 다수라는 종교다원주의는 관념적으로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하지만 '절대가 다수'라는 이 형용모순의 현실 속에서 상생과 공존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조계종은 지금까지 종교가 우리 사회에서 상생과 공존이라는 평화의 메시지를 구현하지 못하고 도리어 세상 사람들의 걱정이 되어 온 현실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반성했다. '나의 진리'는 더 큰 진리의 한 조각이라는 대승(大乘)불교의 '열린 진리' 정신을 다시금 상기하면서 이웃종교에도 진리가 있음을 인정하는 차원을 넘어 이웃종교의 가르침에도 귀를 기울이고 배우겠다고 하였다. 이웃종교를 경쟁적 관계가 아니라 진리를 향한 동반적 관계로, 사회적 공동선을 실현하는 동지적 관계로 보겠다는 것이다.

조계종은 이번 선언이 완성본이 아니라 초안(草案)이라고 했다. 불교에는 출가(出家)와 재가(在家)를 포함한 모든 불교인들이 참여하여 다양한 토론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는 '대중공사'의 전통이 있다. 이 '대중공사'를 통해 이번 선언의 최종본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과 우여곡절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종교평화 선언은 대중적 실천을 위한 것인 만큼 대중의 참여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 종교평화 선언이 불교계의 독백(獨白)으로 끝나서는 안 되며, 다른 종교계의 호응이 필요하다. 나아가 종교평화 선언이 종교 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처한 갈등과 다원성의 문제를 직시하고 그 해결의 길을 함께 모색하는 다양한 '대중공사'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