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역전(人生逆轉). 데뷔 12년을 맞은 그만큼 이 말이 잘 어울리는 여배우가 있을까. "우울하게 생겼다"는 편견과, "주연감이 아니다"는 시선에 갇혀 있었던 배우 서영희(31). 영화 '추격자'(2007)와 드라마 '선덕여왕'(2009)의 선덕여왕 보모 역으로 잠시 주목받았을 뿐 그에게 '영광'의 길은 멀기만 해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로 각종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휩쓸면서 그의 인생은 달라졌다. 이번엔 데뷔 이후 처음으로 주말드라마 여주인공을 맡았다. MBC 주말극 '천번의 입맞춤'의 대차고 씩씩한 이혼녀 우주영 역이다.

지난주 일산 MBC에서 만난 그는 "이제야 내 나이대에 맞는 역할을 찾은 것 같아 기쁘다. 유명해져서 가장 좋은 일은 내가 하고 싶은 역할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5월 결혼한 새댁이 이혼녀 역할을 맡았다.

"약간 혼란스럽긴 하다. 아, 현실에서는 이런 일 절대 일어나면 안 되겠구나 하는 느낌뿐이다. 표정도 밝고 내 삶을 개척해나가는 역할, 내 나이대 할 수 있는 역할을 이제야 맡게 됐다."

―데뷔 12년 만에 첫 TV 드라마 주연이다.

"지난 시간에 대한 감정은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가 늦은 건가?' 하는 생각도 있지만 아쉽진 않다. 내가 헛된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니고…. 20대 때 통통 튀는 역할 같은 걸 못해봤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아픔이 있는 이혼녀 역할도 할 수 있게 된 것 아닐까 싶다."

―왜 그동안 TV 드라마에선 서영희를 찾지 않았을까.

"시작을 영화로 해서 그런지, 아무래도 이쪽(드라마) 분들에게 나란 존재가 좀 생소했던 것 같다. 영화에서는 내 캐릭터가 굉장히 차분한 데 반해, 방송에서는 좀 밝고 푼수 같은 캐릭터를 원하시더라. 난 다양한 역할을 하고 싶었는데 잘 안 됐다."

―지금 자신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가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나.

"그런 거는 없다. 내 시작점(영화 '질투는 나의 힘'·2002)이 생각보다 높았다. 데뷔도 연극 무대 주연(1999년 '모스키토')으로 했고. 난 '너무 꾸준한 게 문제'라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들쑥날쑥 힘겹게 올라갔다면 '아, 왜 이렇게 주목이 안 올까, 왜 나한테 이렇게 기회가 없을까' 했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

―그래도 모든 배우는 '톱스타'를 꿈꾸는 것 아닌가.

"그렇겠지. 하지만 난 스타가 못된 것보다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역할을 못할 때의 좌절감이 너무 컸다. 내가 하고 싶은 역할을 하려면 유명해져야겠더라."

―무명 기간 얻은 게 있다면.

"지난 10년 내 상황은 '소풍 날 아침 비 와서 허탈한 초등학생' 같았다. 제작진과의 미팅이라는 것도 엄청 많이 했고, 오디션도 엄청 많이 봤다. '될 것 같다'는 희망을 갖고 있는데 불합격 통보가 오고 그게 반복되면 꿈을 끝까지 갖고 있는 것 자체가 맘이 아픈, 그런 것이었다. 이제는 바보 같은 기대, 상상은 잘 안 한다. 내 마음을 이제 다독일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갖게 된 것 같다."

데뷔 12년 만에 첫 TV 드라마 주연을 맡은 배우 서영희. 그는“많은 분이 나를 우울한 이미지로 알고 있지만 생활 속 나는 단순하고 즐겁게 사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원래 욕심을 부리지 않는 성격인가.

"난 지금 이 순간이 좋다. 사실 CF는 욕심이 나는데, 그것도 돈이나 인기에 대한 욕심이라기보다는 다양한 걸 해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 때문이다. 조급해하면 화(禍)가 돼서 막상 잘 안 되는 것 같더라."

―힘들 땐 딴 거 해보려는 생각도 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별로 할 게 없다.(웃음)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게 제일 재밌다. 굳이 나를 탓해봤자 괴로운 건 나이기 때문에…. 다음번에 잘하면 되니까."

―외모는 예민해 보이는데 실제 성격도 그런가.

"곰 같다.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학교 다닐 때도 선생님들한테 늘 '주의산만'이라고 지적받았다. 지금도 사실, 주변에서 시끄러우면 (이때 방송사 견학 온 초등학생들이 우르르 지나갔다) 솔직히 되게 힘들다. 주변에서 하는 얘기들이 다 들리니까."

―작품 선택 기준은.

"시놉을 딱 덮었을 때 내가 등장하는 신이 몇 개가 됐든, 작품 안에 내가 해야 하는 존재의 이유만 있으면 한다. 계산하거나 계획을 세워놓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