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고쳤다고 난리다. 역사 교육과정 초안(草案)을 제출했던 위원 24명 중 21명이 자신들이 개발한 초안을 교육과학부가 변경한 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국가 교육과정의 초안 연구를 담당한 위원들이 정부가 고시한 교육과정에 집단으로 반기를 드는 초유의 사태가 전개되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교육은 많은 국민에게 큰 걱정거리의 하나였다. 김대중 정부 시절 만들어진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나 지금의 '한국사' 교과서가 대부분 대한민국을 폄하하고 북한을 두둔하는 입장에서 서술됐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시정하고자 2009년에 개정했던 교육과정을 금년에 다시 개정하면서, 교과부는 국사편찬위원회에 역사 교육과정 초안 개발을 위임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교육과정 재(再)개정의 기본방향으로 '올바른 역사관과 국가의 정체성 제고'를 표방했다. 하지만 국사편찬위원회 산하에 설치된 역사교육과정개발정책연구위원회가 개발한 역사 교육과정 초안은 재개정의 취지에 미흡한 것이어서, 한국현대사학회를 비롯하여 국방부와 전경련 등에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건의서를 제출했다.
국가 수준 교육과정 고시의 권한과 책임은 교과부 장관에게 있다. 교과부 장관은 그것의 수정 권한도 있다. 교과부 장관은 교육과정에 의거하여 개발되고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수정을 지시할 수 있다. 지난 17일의 고등법원 판결은 교과서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인 심사권을 인정했다. 하물며 고시되기 전의 교육과정 초안을 검토하여 문제 부분을 수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전에도 교육과정이 고시되기 전에 수정되는 경우가 없지 않았지만, 집단행동을 한 사례는 없었다.
문제를 제기한 정책연구위원들은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는 다른 개념이며, 자유민주주의는 시장 자유와 정부 개입 반대를 뜻하는 편향적인 정치이념이라고 폄하한다. 하지만 민주주의 이론의 세계적 권위자인 래리 다이아몬드 스탠퍼드대 교수는 한국 내 좌파가 자유민주주의를 문제삼는 것은 신자유주의와 혼동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면서,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심화된 높은 단계의 특성이라고 설파한다.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따라서 교과부가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수정한 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더욱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책연구위원들은 '민주주의'로도 개념 설명이 충분하다고 주장하지만 우리 학교나 사회에서 민주주의·민주라는 개념이 혼동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즉, 민주주의에는 자유민주주의·사회민주주의·민중민주주의·인민민주주의 등 여러 갈래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혼용하여 사용된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역사적 전개 과정을 통해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와 다른 것들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정치체제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된 것이라는 점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학생들이 실감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6·25전쟁 때 지켜낸 대한민국의 정치체제와 4·19 이후 발전시켜 온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면 어떤 민주주의인가?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설명해야 한다. 민주주의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